근로감독관 1명이 200건 담당…쌓이는 업무에 느슨해진 감시망[임금체불추적기]④

국제노동기구(ILO) 기준보다 근로감독관 수 부족
쌓이는 업무에 느슨해진 감시망
임금체불·직장내 괴롭힘 등 업무급증

편집자주지난해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한 임금체불액이 올해 4월 기준 8000억원에 육박해 사상최대치 경신을 앞두고 있다. 경기악화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노동인구가 2배인 일본의 20배를 넘는 임금체불액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임금체불이 많아지고 쉬워진 나라가 됐는지 원인을 추적해봤다.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근로자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한다. 해당 민원이 접수되면 관할 노동청은 사건 접수 직후 근로감독관을 지정해 25일 이내에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체불 임금이 확인되면 사업자에게 지급을 지시한다. 사안에 따라 근로감독관은 최대 75일까지 사건조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서울고용노동청 내 진정서 접수창구 모습. 사진=박현주 기자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근로자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한다. 해당 민원이 접수되면 관할 노동청은 사건 접수 직후 근로감독관을 지정해 25일 이내에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체불 임금이 확인되면 사업자에게 지급을 지시한다. 사안에 따라 근로감독관은 최대 75일까지 사건조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서울고용노동청 내 진정서 접수창구 모습. 사진=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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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감독관 숫자의 절대적 부족은 우리나라의 임금체불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요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임금체불 사건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할 수 있는 근로감독관 수는 감소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근로감독관 1명이 연간 200건에 가까운 사건을 처리하고 있어, 악덕 사업주가 감시망을 피해 고의적인 임금체불을 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근로감독관 2200여명, 접수 사건은 40만건…턱없이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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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로감독관은 크게 근로기준법 분야를 다루는 근로감독관과 산업안전보건 분야를 다루는 산업안전감독관으로 나뉜다. 임금체불 문제를 다루는 일반 근로감독관의 정원은 지난해 기준 2236명이다. 근로감독관 정원은 2020년 2290명에서 이듬해 2307명까지 늘어났으나 이후 3년 연속 감소 추세다.


취업자 중 임금근로자를 의미하는 경제활동인구가 지난해 2939만명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전체 근로자 1만명당 0.76명의 비율로 근로감독관이 있는 것이다. 근로자 1만명당 1.0명 이상의 근로감독관을 둘 것을 권고하는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못 미치고 있는 수준이다.

ILO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주요 78개국의 근로자 1만명당 근로감독관 숫자 집계 결과 독일(1.41명), 핀란드(1.40명), 스위스(1.33명), 노르웨이(1.21명), 스페인(1.07명) 등의 순이었다. ILO는 "근로자 1만명당 근로감독관 수는 고소득국가의 경우 평균 0.84명, 저소득국가의 경우에는 0.47명으로 차이가 났다"고 밝혔다. 여기서 고소득국가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 1만4000달러 이상 국가를 의미하는데 우리나라의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6624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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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여명 남짓인 근로감독관들이 처리해야할 업무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각 지역 노동청이 접수한 노동관계법 위반 신고사건은 42만9663건을 기록해 전년 40만800건 대비 3만건 가까이 늘어났다. 근로감독관 1명당 한 해에 약 192건의 신고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중 임금체불 신고건수만 따져봐도 지난해 19만4915건으로 근로감독관 1인당 약 87건에 달한다.


근로감독관집무 규정에 따라 근로감독관들이 신고 접수를 받아 처리하는 소관 법률만 해도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남녀고용평등, 임금채권보장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근로복지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 19가지에 이른다. 최근에는 임금체불과 함께 직장 내 괴롭힘 신고건수가 급증하면서 근로감독관들의 업무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건수는 법이 시행된 2019년 이후 2020년 5823건에서 지난해에는 1만2253건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높아지는 근로감독청 설치 요구…"근로 감독기능 독립시켜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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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감독관들의 노동환경 감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를 분리, 근로감독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근로감독청을 설치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지난 1월 박홍배 민주당 의원 등 22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근로감독청 신설안이 들어갔다. 현재 고용노동부가 고용과 노동, 근로감독 업무를 모두 도맡는 것보다 근로감독 부문의 전문기관이 별도로 있는 것이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2026년부터 근로감독청이 신설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가 추정한 근로감독청의 신설 이후 운영비용은 2026년부터 2030년 5년동안 1335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매년 약 270억원의 예산이 추가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추가 예산이 들더라도 급증하는 임금체불 사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독립기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근로감독관들은 지금 임금체불 사건만 놓고봐도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며 "임금체불과 부당노동행위, 노동관계법 위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체계, 독립기구가 생기면 문제 해결 전환의 계기도 마련될 수 있고 제도 개선 논의도 보다 집중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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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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