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찾은 충남 보령 한국중부발전의 보령화력발전소. 큰 글씨로 '식음료용'이라고 표시된 액화 이산화탄소 저장 탱크 2개가 야외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탱크 1개에 450t의 액화 이산화탄소가 들어가죠. 하루에 120~150t씩 생산합니다. 8일이면 저장 탱크 2개가 다 채워집니다." 발전소를 안내해주던 최승열 중부발전 보령발전본부 제3발전소 화학기술부장은 액화 이산화탄소 저장 탱크가 가득 차면 구매 계약을 한 외부 업체에서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액화 이산화탄소는 농작물 생육 촉진을 위한 시설 원예, 용접 가스, 드라이아이스 생산, 탄산수 제조에 쓰인다. 낮에 비닐하우스에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면 광합성을 촉진해 식물이 더 잘 자란다. 액화 이산화탄소 탱크에 식음료용이라고 적은 것은 그만큼 순도가 높다는 뜻으로 한 글로벌 식음료 회사로부터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액화 이산화탄소의 원재료는 바로 옆의 보령화력발전소 7, 8호기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다. 중부발전은 화력발전소 배기가스 중 일부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뒤 이를 액화하는 이산화탄소포집활용(CCU) 설비를 갖추고 있다. 2013년에 포집 설비를 준공했으며 2017년에는 압축 및 액화하는 설비까지 구축했다. 중부발전 보령화력의 CCU 설비는 10㎿급으로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다.
탄소 포집 기술은 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 중립 시대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다. 석탄화력발전소뿐 아니라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산업 현장에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천연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생산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데도 이 기술이 활용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탄소 포집 기술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내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80% 정도로 파악된다.
중부발전의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는 당초 한국전력 및 발전 5개사, 민간기업, 학계가 참여하는 정부 정책과제로 진행됐다. 2021년 과제가 완료된 이후에도 계속 가동하며 액화천연가스(LNG) 기화 냉열을 활용한 탄소 포집 기술(심냉 포집),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고부가가치 연료로 전환하는 그린올 생산 등 다양한 연구개발 과제에 활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1만 시간 이상 장기 연속 운전을 달성했다.
탄소를 포집하기 위해서는 발전소 배기가스를 흡수탑으로 보낸다. 아민(Amine) 계열 흡수제를 흡수탑 위에서 분사하면 흡수제가 이산화탄소만을 선택적으로 품게 된다.
이후 탈거탑에서 고온의 증기를 공급하면 다시 이산화탄소가 떨어져 나온다. 분리된 이산화탄소를 압축, 정제, 냉각해 액체 상태의 이산화탄소를 만들면 모든 공정이 끝난다. 보령화력발전소의 설비 용량은 하루 200t이며 하루 최대 150t, 연간 3만5000t의 액화 이산화탄소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의 핵심은 흡수제다. 흡수제의 성능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포집하느냐가 달려 있다. 흡수제가 액상이냐 고형이냐에 따라 포집 설비의 종류도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보령화력발전소에서는 한국전력 전력연구원이 개발한 아민 계열의 액상 물질인 '코솔(Kosol) 6'가 사용된다. 중부발전은 코솔6의 효율성은 90%(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90% 이상을 포집)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에는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등 환경오염물질이 포함돼 있다. 국내에는 엄격한 환경규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이들 환경오염물질을 제거한 뒤 내보낸다. 지난해 보령 7~8호기의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평균 배출 농도는 각각 8.8~14.8ppm, 6.9~9.2ppm으로 허용 기준치인 40ppm을 밑돌았다. 배출한 먼지의 평균 농도는 2~2.3㎎/㎥로 규제치인 9㎎/㎥를 만족했다. 여기에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까지 포집하면 청정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은 탄소 중립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기술이지만 확대 적용하는 데는 커다란 걸림돌이 하나 있다. 바로 경제성이다. 탄소를 포집하기 위한 설비 구축과 포집 공정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지만 아직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다.
보령화력발전소의 경우 1t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기 위해서는 증기 생산 등에 2.3기가줄(GJ)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보령화력은 필요한 증기를 화력발전용에서 일부 가져다 쓴다.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해야 하는 증기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것이다. 발전소가 아닌 다른 산업현장에서는 따로 증기를 생산해야 하는데 이때 추가로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산화탄소 1t을 포집하는 비용은 150달러 내외로 알려졌다. 보령화력발전소에서 하루 150t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경우 2만2500달러(약 3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45Q 조항에 근거해 탄소 포집 비용의 일부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주고 있으나 국내에는 이 같은 지원책이 없다. 그렇다 보니 국내 기업들은 CCU 기술을 실증하는 수준에 그칠 뿐 선뜻 산업 공정에 적용하거나 상용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완희 중부발전 탄소중립부장은 "액화 이산화탄소 판매를 통해서는 운영비에 충당할 정도의 수익만이 발생하고 있다"며 "탄소 포집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포집 효율성 향상, 활용처 발굴 관련 제도 정비 등의 정책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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