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사업주를 신고하더라도 사법처리로 이어지는 비율이 20%에 불과한 지금의 처벌 구조는 고의적인 임금체불 범죄가 반복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은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불가)가 적용되는 데다 피해 근로자가 사업주의 임금체불 고의성까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고소·고발이 쉽지 않다. 임금체불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도 근로기준법 최고 형량인 징역 3년보다 낮은 2년6개월형이다.
22일 고용노동부의 임금체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체불 신고건수 19만4915건 중 사법처리된 건수는 3만9513건으로 사법처리율이 20.27%에 그쳤다. 임금체불 사건에 대한 사법처리율은 2020년 29.83%에서 꾸준히 감소해 20% 초반까지 내려왔다.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가 신고되더라도 10명 중 8명은 사법처리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근로자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한다. 해당 민원이 접수되면 관할 노동청은 사건 접수 직후 근로감독관을 지정해 25일 이내에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체불 임금이 확인되면 사업자에게 지급을 지시한다. 사안에 따라 근로감독관은 최대 75일까지 사건조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후 근로감독관은 피해근로자에게 사업주에 대한 처벌 의사를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처벌을 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근로자 입장에서 근로감독관의 중재에 따른 지도처리를 받으면 더 빨리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어서다. 임금체불 신고건수 중 근로감독관에 의해 지도처리된 비율은 지난해 77.28%를 기록해 2020년 68.26% 대비 1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사업주 처벌 절차에 들어가면 검찰 수사 및 소송전을 치르면서 오히려 밀린 임금을 받을 때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하은성 노무사는 "처벌 의사를 밝히면 사업주의 고의성 입증과 함께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해서 밀린 월급을 받기 더욱 어렵게 된다"며 "사업주 입장에서는 임금체불로 신고를 당하더라도 얼마간 버티다가 뒤늦게 임금만 지불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임금체불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범죄지만, 실제 양형기준은 체불금액에 따라 달리 정해져 있다. 상습 절도범보다 약한 처벌을 받는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의 '근로기준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을 보면 임금 등 미지급 범죄 금액이 5000만원 미만의 경우 상습 임금체불로 인해 가중처벌이 적용 된다 해도 징역 6개월에서 1년 사이의 형이 내려진다. 5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의 경우에는 8개월~1년6개월, 1억원 이상의 경우에는 1년2개월~2년6개월형이 기준이다.
상습적으로 도둑질을 한 상습누범절도범의 가중처벌 양형기준이 징역 3년~6년형임을 고려하면 고의적인 임금체불 범죄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처벌을 받는 셈이다. 고용부도 지난 3월 양형기준이 근로기준법상 최대 형량인 3년 이하 징역에도 미치지 못해 재범률이 높다며 양형위원회에 양형기준 강화를 요청한 바 있다. 고용부는 피해근로자 수와 체불 기간을 양형 가중요소에 명시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고액 체불에는 집행유예가 선고되지 않는 방안도 함께 요청했다.
양승엽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사법부에서는 사업주를 구속하면 결국 임금체불 문제 해결이 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양형기준을 약하게 적용하거나 가급적 집행유예를 해왔다"며 "하지만 계속해서 늘어나는 임금체불 억제와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일벌백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10월23일부터 1년간 근로자 1인당 3개월분 이상의 임금을 체불하거나 5회 이상 3000만원 이상의 임금을 체불한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해 신용 제재, 정부 지원 제한, 공공 입찰 불이익 등을 가하는 '상습 임금체불 근절법'이 시행된다. 해당 사업주는 상습 체불자 명단에 올라가며,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지 않고 출국금지 조치도 내려진다. 또 피해 근로자는 임금 체불로 발생한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사업주에게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고, 미지급된 임금에 대한 지연이자 20%를 퇴직자와 재직자 모두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습 임금체불 근절법'을 시행하더라도 임금체불이 쉽사리 근절되긴 어렵다고 입모은다. 해당 손해배상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피해 근로자가 직접 고소·고발에 나서 체불 사업주가 명백한 고의로 임금 체불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 노무사는 "예를 들어 현장에서 연장근로수당 체불을 당한 노동자가 사업주를 고소하려면 캡스 등 출퇴근 보안기록, 구글의 위치추적 기록 등을 모아서 증거로 제출해도 그 시간동안 실제로 얼마나 일을 했는지, 사업주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등을 모두 입증해야한다"며 "반의사불벌죄가 적용 안되더라도 사업주의 고의적인 체불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피해 노동자들도 증거를 모으는 과정에서 지칠 수밖에 없고, 근로감독관들도 사업주와의 합의 쪽으로 돌아서기 쉽다"고 지적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