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나와 1000만원짜리 학원도 다녔는데 '오탈자' 낙인만 찍혔다

기회는 다섯번, 실패는 빚으로…1737명 오탈자의 그림자
변호사시험 2명중 1명 불합격
N수생은 스터디 참여도 어려워
신림동 학원 수강료 1000만원
로스쿨 학비 대출 연체도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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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사립대 로스쿨을 졸업한 이혜진씨(33)는 올해 1월 변호사시험에 떨어진 뒤 신림동에 있는 'N수생 스파르타반'에 등록했다. 평소 자신 있던 민사법 시험이 어렵게 나와 합격선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혜진씨는 내년 1월 네번째 변시에 도전한다. 수강료는 1000만원 안팎. 이달부터 12월까지 8개월 동안 학원의 집중 관리를 받게 된다. 혜진씨 "변시 N수생이 되는 순간 스터디그룹에 들어가기도 힘들어졌고, '오탈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신경안정제 처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오탈자'는 변호사 시험에 다섯차례 낙방한 로스쿨 졸업생을 뜻하는 은어다.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는 5회로 제한돼 있는데 오탈자들은 로스쿨을 나오고도 변호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52.3%다. 첫 시험이 치러진 2012년 합격률 87.15% 대비 많이 낮아졌다. 작년까지 모두 13번 변호사시험이 있었는데 불합격자들이 누적되면서 오탈자는 1700명을 넘어섰다. 매년 200명 가량이 새로 생기기 때문이다. 일부 시험 응시생들 가운데는 5번까지 가지 않고 3~4번 낙방하면 시험 준비를 접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변호사 자격이 없지만 로스쿨 수료증을 갖고 직업을 찾는 경우가 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로스쿨 재학 시절 빌렸던 학비 대출금을 갚지 못해 연체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6개월 이상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로스쿨생은 지난 3월 기준 97명으로 집계돼 8년 전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했다. 해마다 장기연체자 그래프가 우상향하는 것이다. 장학재단 대출은 7~10년 거치 기간을 두기 때문에,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시험에 탈락한 사람들 쌓이면서 대출상환이 안 되고 있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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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방에서 사교육을 받으러 올라오는 변호사시험 N수생들의 부담은 더 크다. 이혜진씨의 경우 고시원 월세 30만원, 생활비 50만원이 매월 들어간다. 올해 12월까지 공부하는데만 1640만원 정도 되는 돈을 써야 한다. 그는 "부모님이 대출을 받아주셨는데,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해 갚아드리고 싶다"고 했다.


대입 재수생 기숙학원처럼 '변시 대비 기숙학원'까지 등장했다. 한 유명 변시 기숙학원은 '호텔형 스터디 공간'을 표방하며 1인실에 월 300만원을 받고 있다. 숙식 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학원에서 생활 관리를 해주기로 유명한 변시학원은 2월부터 12월까지 수강료로 1068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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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졸업생들은 '5년 이내 5회 응시 제한'을 둔 변호사 시험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여러차례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2016년과 2018년, 2020년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무제한 응시로 발생하는 '고시 낭인' 양산을 막기 위해 제한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응시제한 폐지 단체 관계자는 "애초 변호사 시험은 의사 시험처럼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합격하는 자격시험을 전제한 것이었다"라며 "그러나 사시처럼 선발시험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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