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 본 사장님 딸이…" 쪼개기 꼼수에 억울한 청년의 눈물 [임금체불추적기]①

임금체불 새로운 꼼수, 사업장 쪼개기
5인미만 위장 의심사업장 10년간 3.8배↑

편집자주지난해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한 임금체불액이 올해 4월 기준 8000억원에 육박해 사상최대치 경신을 앞두고 있다. 경기 악화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노동인구가 2배인 일본의 20배를 넘는 임금체불액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임금체불이 많아지고 쉬워진 나라가 됐는지 원인을 추적해봤다.
ChatGPT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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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기부한다고 자랑하면서 밀린 임금은 도대체 왜 안 주는 건지 괘씸해요."


대전의 한 카페에서 근무했던 김소영씨(25)는 같은 카페 직원들과 함께 지난해 12월 관할 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했다. 사업주인 신모씨(68)가 사업장 고용 규모를 '5인 미만'으로 위장해 연장근로, 야간수당과 같은 임금 일부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신씨가 5인 미만 사업장이 영세사업장으로 분류돼 야간수당 지급, 근로시간 준수 등 일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고 주장했다.

김소영씨가 사업주 신모씨의 카페에 고용될 당시 쓴 근로계약서. '협력업체간 이동근무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다.

김소영씨가 사업주 신모씨의 카페에 고용될 당시 쓴 근로계약서. '협력업체간 이동근무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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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가 본인과 아내, 딸 명의로 나눠 등록한 사업장은 카페 3곳과 식당, 노래연습장 등 총 8개에 이른다. 김씨는 "함께 일한 직원 수가 13명 정도였는데, 신씨는 이들을 각기 다른 카페에 배치하며 업무를 지시했다"며 "명의상 사업주인 신씨의 딸은 카페에서 일한 8개월간 딱 한 번 봤다"고 주장했다. 김씨 주장대로라면, 신씨가 운영하던 카페는 5인 이상 근무사업장이다.


해당 사건을 맡은 근로감독관도 김씨의 근무 근거 자료를 토대로 받아야 할 체불 임금을 1518만원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신씨는 5인 미만 사업장임을 주장하며 본인이 김씨에게 지불해야 할 체불액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사업주 측 계산방식은 인정할 수 없으며 현재 해당 사업장들은 근로감독이 진행 중"이라며 "사업주가 운영하는 전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임금체불 피해자는 80명 정도 된다"고 밝혔다.


김소영씨가 지난해 8~10월 받은 월급 내역. 8월에는 사업주 신모씨 명의로, 9월과 10월에는 신씨의 배우자인 정모씨의 명의로 입금됐다. 김씨는 월급 내역을 통해 신씨가 운영하는 사업장 간 인사·회계가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해당 사업장이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소영씨가 지난해 8~10월 받은 월급 내역. 8월에는 사업주 신모씨 명의로, 9월과 10월에는 신씨의 배우자인 정모씨의 명의로 입금됐다. 김씨는 월급 내역을 통해 신씨가 운영하는 사업장 간 인사·회계가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해당 사업장이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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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 처벌 의사를 밝힌 김씨는 "밀린 임금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다면 반성하고 있다고 느꼈을 테지만 사업주가 노동청 출석을 계속 미루고 있다"면서 "시간 끌기로 보여 괘씸하다"고 말했다.


7개월째 해결되지 못한 사건은 결국 김씨의 신고로 현재 검찰 수사 단계로 넘어갔다. 신씨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밀린 임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면서 "가족끼리 하는 일이지, 사업장 쪼개기가 아니다. 해석상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5인 미만 위장 의심 사업장' 10년간 3.8배↑…"당국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딱 한 번 본 사장님 딸이…" 쪼개기 꼼수에 억울한 청년의 눈물 [임금체불추적기]① 원본보기 아이콘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업장 쪼개기'를 통해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고 결국 임금체불로 이어지는 사건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5인 미만 위장 사업장으로 의심되는 사업장의 수는 지난해 기준 14만4561곳이다. 10년 전인 2015년 3만7994곳의 3.8배에 해당한다. 위장 의심 사업장 수는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가파르게 증가했다. 상시근로자가 5인 미만으로 신고돼 있지만, 사업장을 쪼개거나 근로자를 프리랜서와 같은 사업소득자로 위장했다고 의심받는 곳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사업장 규모별 임금체불 현황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임금체불액은 6659억원으로 전년 대비 30.05% 급증했다. 지난해 임금 체불 전체 피해자의 46.1%에 해당하는 13만600명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29인 규모 사업장에서도 임금체불액이 7932억원을 기록해 증가율이 20.91%에 달했다. 전체 임금체불의 80%가 소규모로 분류되는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셈이다.


하은성 샛별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5인 미만 영세사업장 보호 조항을 악용해 대형 호텔, 모텔 등에서 대부분 근로자를 파견업체에서 보낸 사업소득자로 위장하는 꼼수가 만연해있다"며 "정작 진짜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이런 편법을 쓸 여유조차 없다. 적극적인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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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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