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방화·성폭행 '범죄 도미노'…숨은 마약범 '상상 이상'[뉴스인사이드③]

③마약이 연 지옥문
마약 중독, 강력범죄로 연결
과거와 달리 집단성 띠기도
유통 관련 범죄 갈수록 늘어
적발된 범죄는 '빙산의 일각'
'암수율 29배' 연구 결과도
"수사기관 통계, 현실 미반영"

지난 1월, 서울 시내 한 원룸에서 2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현장에는 각종 합성 마약과 대마초, 주사기, 액상 니코틴 전자담배 등이 널려 있었다. 수사 결과 체포된 피의자는 수도권 대학 재학생으로, 친구들과 함께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약을 사고 팔며 집단 투약을 해왔다. 지난해 2월에는 강원도 춘천시 한 가정집에서 마약을 투약한 50대 남성이 아내와 아들을 불륜 관계로 의심해 흉기를 드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마약 중독이 인간성을 파괴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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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이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소지나 투약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약 중독은 때론 살인, 방화, 성폭행, 감금 등 끔찍한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나비 효과를 낳는다. 마약 살 돈을 구하려고 도둑질을 하고, 마약 거래를 위해 불법 자금 거래가 지금 이 순간에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약이 범죄 도미노로 이어지는 '지옥문'을 열어 젖히는 것이다.


마약 중독의 나비효과, 강력 범죄

지난 3월 대법원은 20대 남성에게 징역 30년을 확정했다. 그는 지난해 4월 20일 마약을 투약한 뒤 환각 상태에서 여자친구를 목을 졸라 살해했다. 조사 결과 범행 이틀 전부터 8시간 전까지 필로폰 1g을 세 차례에 걸쳐 투약하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피해자의 외도를 의심하며 말다툼을 벌이다 범행했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변호인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잠재적 위험성이 극단적으로 현실화한 사례로 불법성이 중대하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웃과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사례도 있다. 지난달 2일 인천시 연수구에서는 마약에 취한 55세 남성이 새벽에 아파트에 불을 질러 주민 수십 명이 긴급히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2∼3시간 간격으로 필로폰을 여러 차례 투약했고 환각 상태에서 누군가 자신을 살해하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범행한 뒤 1층으로 내려와 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마약은 성범죄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2023년 30대 남성 두 명이 피해자들에게 대마를 피우게 한 뒤 성폭행하고 그 과정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에서 드러난 피해자만 20명이 넘었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뒤늦게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도 있었다고 한다. 그보다 1년 전에는 서울의 한 유흥업소 직원이 손님이 건넨 술을 마셨다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그 술에는 필로폰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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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관련 범죄들은 환각, 피해망상, 충동조절 장애 등 정신·신체적 부작용과 직접 연결돼 있다. 마약 수사 경험이 많은 변호사는 "몰래 숨어 혼자 마약을 하던 과거와 달리 여러 사람이 함께 마약을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집단성을 띠면서 수위가 높아지는 강력 범죄가 더욱 우려된다"고 말했다.


마약 유통과 관련한 범죄도 갈수록 늘어난다. 과거에는 마약 거래가 주로 현금을 통해 이뤄지면서 돈세탁 범죄로 이어졌다면, 최근에는 추적이 훨씬 어려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활용한 비대면 거래가 늘면서 자금 은닉이 더욱 고도화하고 있다. 불법 수익의 은닉과 전환이 간편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조직적 자금세탁으로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숨은 범죄는 상상 초월…"29배 추정" 연구 결과도

적발되는 마약 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다. 신고되지 않거나, 수사기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마약으로 인한 범죄가 도사리고 있다.


2019년 박성수 세명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 측정 연구'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신고·검거되지 않은 범죄의 비율)은 28.57배에 달한다. 단순 투약사범부터 제조, 밀수, 밀반입 등 마약 범죄 전반에 대한 추정치다. 이는 정부가 추산해온 10배보다 3배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연구에는 학계, 마약관련 공무원, 약사, 민간치료시설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한 직군별 설문 및 면담조사가 반영됐다.


연구팀은 "수사기관의 적발 실적 위주로 수집되는 통계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마약 범죄 통계의 구조적 한계를 꼬집었다. 수사 실적이 기관별 성과로 직결되다 보니 정보 공유가 제한되고, 동일한 범죄라도 기관별 통계 집계 방식이 달라 일관된 데이터 분석이 어렵다는 문제도 함께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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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코로나19 이후 마약 유통이 비대면·디지털화 되고 마약 투약자 저변이 확대되면서 드러나지 않는 범죄가 더욱 증가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 교수는 "검거 통계로 드러난 수치는 '연못 속에 잡힌 물고기'일 뿐"이라며 "검거된 인원이나 통계에 연연하기보다 재범 방지와 치료 및 재활에 힘을 쓰는 방향으로의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 막으려면 '뿌리' 잘라내야

숨은 마약 사용이 엄청나고, 범죄 도미노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사법기관과 수사기관은 대응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연쇄적 범죄의 뿌리로 보고 이를 끊어내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사회적 파장과 반성 여부, 치료 가능성 등을 종합 판단해 마약 사범의 처벌 수위를 정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올해 수사·기소 지침을 개정해, 단순 투약자라 해도 공공 위해가 확인되면 실형 구형 원칙을 적용 중이다. 2024년 기준 마약 관련 1심 사건의 실형 선고율은 60%를 넘겼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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