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안 좋은 일을 제가 다 경험했는데, 하나가 더 쌓인다고 무슨 문제가 될까요."
2022년 성착취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상담사를 찾아온 이주영(가명·17세)양이 했던 말이다.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했던 이양은 경계성 지능장애가 있었고 대인 관계도 어려움을 겪었다. 잘 웃지도 않는 이양의 유일한 소통 창구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오픈 채팅이었다. 온라인에서 만난 성인 남성들은 이양에게 다정한 말을 건넸고, 온라인 쿠폰 등을 선물로 보냈다. 친분이 쌓인 이후 이들로부터 성폭력과 성착취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했지만, 이양은 그들이 본인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대상이라 믿으며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적 자극을 가장 좋은 경험이라고 여겼다.
센터의 지원은 이양의 정서적 결핍을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 이뤄졌다. 이양은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자신과 나이대가 비슷한 청소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동의하지 않은 성적 행위가 일반적인 대인 관계에서는 성립할 수 없음을 배웠다.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해보는 방식의 사회화 훈련도 거쳤다. 신경정신과 진료도 함께 받았다. 2년여 시간이 흐른 지금, 이양은 당시에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먼저 웃기도 하고 질문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성인 남성이 왜 미성년자한테 조건만남을 제안할까요? 정말 이상한 것 같아요."
대전지역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3학년 박지수(가명)양이 이렇게 말하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박양은 불안과 강박감이 높은 청소년이었다.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고 있었지만, 돈이 없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소비를 과시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채팅앱을 통해 만난 남성들과 조건만남을 시작했고, 성착취 피해로 이어졌다.
박양의 어머니가 우연히 박양의 휴대전화를 보고 대전성착취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아청센터)에 연락을 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센터를 방문했던 박양은 그때까지도 자신이 성착취 피해자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가해 남성이 금전적 도움과 함께 정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었기에 오히려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마지못해 경찰서에 진술하러 가서도 가해 남성에게 '이분께서 오셨고요', '하셨고요' 등 극존칭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서적 결핍을 채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박양은 달라질 수 있었다. 박양은 센터 상담과 함께 신경정신과 치료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통제적인 양육관을 갖고 있던 어머니도 박양의 변화를 위해 마음을 내려놓고 긴밀한 대화를 진행했다. 박양은 조금씩 회복했다. 자신이 왜 피해자인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이해했다. 박양은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해 남성에 대해 "본인 또래에게서는 관계 형성을 배제당해서 그런 것 같다"며 자기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피해 청소년들이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할 때 너무 속상하죠. 가해자를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며 연인 관계로 생각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서울지역 한 성착취아동지원시설 관계자는 "'SNS로 만났던 사람인데 말을 너무 착하게 한다'고 하길래 피해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성인 남성이 지속적인 성적인 피해를 주고 있었다"면서 "누군가가 따뜻하게 다가오면 '이 사람은 괜찮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피해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어 "더 큰 문제는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시설에서 거주하는 아이들에게 공동생활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외로움을 위로하는 척하면서 다시 피해 청소년들을 불러내는 것"이라며 "'외박을 하게 해주겠다', '휴대전화를 사주겠다' 하면서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성착취 피해가 재발한다"고 말했다.
채선인 대전 아청센터 팀장도 최근 그루밍 범죄가 성착취 피해로 이어지면서 피해 아동·청소년에게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전했다. 채 팀장은 "대인관계가 어렵거나 소비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며 "학교에 다니면서 성착취 범죄에 노출되는 비중이 학교 밖 청소년보다 더 높다"고 덧붙였다.
진유림 평화의샘 산하 성착취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띠앗) 상담사는 "가해자들은 온라인 채팅을 통해 정서적으로 취약한 청소년들을 찾아내 피해 대상으로 삼는다"면서 "2022년만 해도 가해자들은 누가 봐도 성착취와 연관된 유사 단어들을 검색해서 피해자를 물색했지만, 최근에는 우울, 술, 담배 등 성착취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단어들을 검색한 다음 피해자에게 접촉해 성착취 범죄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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