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강남 아파트 왜 비쌀까...이유는 "꼬마빌딩"

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강남이 유명한 건 비단 비싼 집값 때문만은 아니다. 뜨거운 교육열에 더해 판자촌 철거와 같은 사회 문제로도 자주 뜨겁게 달아오른다. 저자는 강남 3구 곳곳에서 살았던 경험과 직접 답사한 경험을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소개한다. 난개발에 시달리던 강남이 어떻게 경제적 성공을 거뒀는지, 강남적 삶의 양식이 현대 한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고 싶은 강남과 사고 싶은 강남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집중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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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해, 강남은 굉장히 역동적인 공간입니다. 바로 여기에 사람들은 매료되고, 또 그렇게 매료된 사람들이 강남을 만들어왔습니다. 실제로 강남 개발의 신호탄을 쏜 것은 정부와 서울시였지만,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심지어 그들의 관심이 줄어든 후에도, 사람들은 강남으로 밀려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밀려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착에 성공했죠. 지금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 p.17 〈프롤로그〉

제3한강교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한강 남북을 잇던 나룻배가 자꾸만 전복 사고를 일으켜 수십 명씩 사망하는 사고가 빈번했습니다. (…) 특히 1962년의 9월 7일의 사고는 제3한강교를 건설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김복근 씨를 포함한 사망자들의 얼굴 사진이 당시 신문에 실려 있습니다. 말죽거리 신화에서는 절대 언급되지 않는, 어떤 강남 3구 주민들의 고단한 생애와 얼굴이 비극적인 사고를 통해 우연히 기록되었습니다. - p.51~53 〈1장 그 많던 농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농촌 강남의 마을들은 뜻밖의 문화 현상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서초구 잠원동에는 '나루마을'이라는 오래된 마을이 남아 있습니다. (…) 바로 이곳에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외식 체인을 만들어 유명해진 '한신포차'가 탄생했습니다. (…) 1970년대 말부터 한신공영이란 건설사가 나루마을 주변인 서초구 반포동과 잠원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가 되면 아파트단지를 따라 포장마차들이 모여들었고요. 이웃한 강남구 신사동의 유흥업소에서 밤새워 노느라 지친 사람들이 이곳의 포장마차촌을 자주 찾았는데, 그러면서 주변 아파트단지의 이름을 따 자연스레 '한신포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네요. - p.89~92 〈1장 그 많던 농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박원순 서울시장 당시 강제되었던 주거용 건축물의 35층 높이 제한이 오세훈 서울시장 2기 시기에 해제되면서, 요즘 여의도 및 강남에서 재건축 아파트단지들의 층고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방부가 다섯 곳의 재건축조합에 대공 진지를 설치하라고 요구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죠. (…) 강남구 압구정동은 강남 3구에서도 가장 북쪽으로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대공 진지가 설치될 가능성이 큽니다. (…) 말죽거리 신화의 배경에 안보 불안이라는 심리가 깔려 있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강남의 과거, 현재, 미래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 p.119~121 〈2장 첫 삽을 뜨다〉

사회 지배 집단의 부동산 투기 논란과 더불어, '그랜저'를 몰고 다니거나 지방에 2만 평 가까운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른바 '가짜 빈민'으로 신분을 속여 꽃마을에 들어온 전문 투기꾼이 수십 명에 달한다는 보도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빈민촌을 개발할 때마다 빈민을 가장한 투기꾼들이 늘 말썽을 일으키는데, 그 최초의 지역 가운데 하나가 꽃마을이었습니다. - 170 〈2장 첫 삽을 뜨다〉

폭우에 취약하다는 강남 지역의 지형적인 문제도 여전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안일한 인식도 여전합니다. (…) GTX-A·C 역사에 버스 정류장까지 들어설 영동대로 지하공간이 지난 2022년 8월 8일의 2호선 강남역이나 4·7호선 이수역처럼 침수될 경우, 그 피해는 훨씬 클 터입니다. (…) 상황이 이러한데도, 2024년 22대 총선에서 올림픽대로를 지하화하자는 공약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올림픽대로를 함부로 지하화했다가는 폭우가 쏟아질 때 서울의 한강 남쪽 지역이 어마어마한 피해를 볼 터입니다. - p.231~234 〈3장 한강의 흐름을 바꾸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강남 3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파트단지가 아니라, 단독주택과 빌라와 꼬마빌딩들입니다. (…) 저는 강남 3구의 아파트단지들이 비싼 이유 중 하나가, 이곳에 아파트단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중상층 시민들은 강남 3구에 살고 싶어 하고, 또 가급적 신축 아파트단지에 살고 싶어 하는데, 그런 주거 형태의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것이죠. - p.268 〈4장 성냥갑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1975년 강남 지역에 아파트지구를 지정할 때도 정부는 "지나치게 비싼 강남 개발 지역의 땅값을 현실화한다"라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어진 아파트단지들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단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파트지구 제도는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입니다. - -p.288 〈4장 성냥갑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흔히 '서반포·동잠실'이니 '마·용·성'이니 하며 목소리를 높입니다만, 도시를 아파트 가격으로만 판단해선 안 됩니다. 그 도시가 주거 기능을 포함한 복합 기능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로 평가해야죠. 강남 3구와의 친연성이라는 하드웨어, 반도체산업이라는 소프트웨어, 이 두 가지가 결합한 것이 확장 강남입니다. - p.382~383 〈6장 거시적으로 보다〉


원래 교통망 건설은 계획이 크게 바뀌는 경우도 많고, 계획은 수립되었지만 준공이 늦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 그러니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토목 사업을 시행하는 기업이 교통망에 관해 주장하는 내용들은 부디 보수적으로 판단해 잘 걸러 듣길 바랍니다. (…) 위례신사선처럼 착공도 안 한 건 아니지만, 2025년에 GTX-A가 완전히 개통해 삼성역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집을 마련했다가 낭패 본 사람들을 한두 명 만나본 게 아닙니다. - p.415~418 〈7장 미시적으로 보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 | 김시덕 지음 | 인플루엔셜 | 464쪽 | 2만4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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