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 선출…"평화가 함께 있기를"

페루 빈민가서 사목
프란치스코 교황 측근…중도파

미국 출신으로 페루에서 사목 활동을 해온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8일(현지시간) 제267대 교황에 선출됐다.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이다.


이날 오후 교황청 수석 부제 추기경인 도미니크 맘베르티 추기경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강복의 발코니'에 나와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우리에게 교황이 있다)"을 외치며 새 교황 선출을 알렸다.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이틀 만이자 네 번째 투표만이다.

레오 14세. EPA연합뉴스

레오 14세. EPA연합뉴스


새 교황이 사용할 즉위명은 '레오 14세'다. 가톨릭에서 '레오'는 라틴어로 '사자'를 뜻한다. 강인함과 용기, 리더십을 상징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1955년생으로 미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일원이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교황을 배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레오 14세는 미국 국적이지만 20년간 페루에서 활동했다. 페루 치클라요 주교로 임명돼 2014~2023년 재임했으며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주교부 장관에 발탁됐다. 2015년 페루 시민권을 취득하기도 했다. 미국인이면서도 페루 빈민가와 농촌 등 변방에서 사목한 이력이 교황 선출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레오 14세 선택은 미국의 글로벌 파워에 맞서 균형을 잡으려는 경향이 있는 교회에서 미국 출신 추기경은 선출될 수 없다는 통념을 뒤집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바티칸 전문가인 토마스 리스 신부는 워싱턴포스트(WP)에 그가 20년간 재임했던 라틴 아메리카 출신 추기경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영국 BBC 방송은 레오 14세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을 이어가면서도 교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며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레오 14세는 주교부 장관으로 일하며 주교 후보자 명단을 결정하는 투표단에 여성 3명을 처음으로 포함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조치를 주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이면서도 신학적으로는 중도 성향으로 평가된다.


새 교황이 선출된 것은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지 17일 만이다. 공식 취임식은 수일 내에 열릴 전망이다.


레오 14세는 이날 선출 이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강복의 발코니'로 나와 이탈리아어로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La pace sia con tutti voi)"이라고 말했다. 이어 페루에서 기억을 회상하며 스페인어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레오 14세는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포르투갈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첫 미국인 교황이지만 이날은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만 연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출신 교황 탄생을 반겼다. 그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그가 첫 번째 미국인 교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정말로 영광"이라며 "나는 교황 레오 14세를 만나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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