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부산현대미술관의 배리어프리 전시 '열 개의 손가락'은 그런 맥락을 담아낸 제목이다. 열 개의 손가락을 두 눈에 비유한 은유로, 감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나이, 신체 조건,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함을 암시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외 장애·비장애 작가 20명의 작품 70여점으로 꾸며졌다. 시각예술, 퍼포먼스, 사운드 아트, 사회적 디자인 등으로 접근성과 공공성에 대한 미술관의 실천적 고민을 담아냈다.
작품 대다수는 시각이나 청각 등 주류 감각이 제한된 채 제작돼 소수자들의 감각과 세계를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초점이 어긋난 시각장애인 사진가의 사진과 재즈 음악을 융합한 정연두, 수화 동작과 안무를 통해 예술 언어의 가능성을 탐구한 다이앤 보르사토, 소리와 촉각을 통해 조각을 재해석하는 김채린의 작업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뇌출혈 이후 왼손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라움콘은 제한된 손가락 움직임을 보완할 젓가락 도구들을 선보인다.
김덕희는 온도에 따라 녹고 굳는 파라핀의 성질을 이용해 혼란한 사회의 연합 가능성을 꿈꾼다. '본다는 것'의 의미를 오래 탐구해온 엄정순은 눈동자와 망원경이라는 두 대상을 결합해 시각에 내포된 양가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전시장 곳곳에는 QR코드를 마련해, 스캔을 통해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의 음성 설명을 청취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감각 스테이션을 설치해 관람객이 작품 소재를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웹툰형 전시 설명, 수어해설 프로그램, 촉각 해설 프로그램 등이 마련됐다.
17일부터는 다큐멘터리 '실명에 관한 기록' '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씨, 예술을 보러가다' 등의 작품을 상영한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감각의 다원성과 접근성의 철학을 예술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미술관이 포용과 공감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열 개의 눈'은 감각을 매개로 사회적 연대와 예술적 실천을 모색하고 모두가 저마다의 감각으로 문화 향유권을 누릴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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