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은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법이다. 키코(KIKO),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라임·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등 불완전판매 이슈가 끊이지 않자 일부 금융상품에만 적용했던 6대 판매 규제(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행위 금지, 부당권유 금지, 허위·과장 광고 금지)가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됐다.
변액보험의 경우 비대면 채널에서 상품 목록만 확인하는 경우에도 적합성 진단 절차를 밟아야 한다. 상품 목록을 단순 확인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적합성 진단 절차를 진행하다 상품가입을 포기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게티이미지
원본보기 아이콘법 시행 4년을 맞이했지만 잡음이 지속해서 나온다. 현행 금소법은 상품 판매자에게 대부분의 책임을 지우는 구조로 설계돼 있어서다. 법 취지와 달리 실효성 있는 소비자보호 역할도 못 하는 데다 상품 개발부터 판매까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강화하고, 소비자보호 규제도 현행 '규정' 중심이 아닌 '원칙'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소법 시행 이후 은행은 방카슈랑스나 펀드 같은 비이자 상품 판매에 진입장벽이 생겼다. 고객에게 상담을 할 때 투자성향 설문을 작성하고, 이를 근거로 적합한 상품을 추천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필수 사항이라 고객이 미리 가입할 상품을 정하고 방문해도 생략할 수 없다. 투자성향 설문을 마친 뒤 상품 설명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녹취 등의 절차를 밟으면 최소 1시간은 걸린다. 고위험 상품 판매 시 은행은 완전판매 절차 준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고령투자자의 경우 더욱 힘들다. 투자성향분석 단계부터 전 과정을 녹취하기 때문이다. 당일 계좌를 신규로 개설하고, 같은 유형의 상품 2개를 가입할 경우 동일한 절차를 2번 반복해야 한다. 고객이 상품 설명을 건너뛰고 싶다고 불만을 제기해도 절차를 생략할 수 없다.
은행 관계자는 "심지어 가입자가 65세 이상 고령투자자가 아니고, 고난도 펀드 상품 판매가 아닌 경우에도 직원들이 추후 분쟁 가능성을 고려해 자신을 보호하고자 녹취를 하고 있다"며 "고객들도 힘들게 상품 가입을 하고, 행원들도 어렵게 금융상품을 판매한다"고 말했다.
변액보험의 경우 비대면 채널에서 상품 목록만 확인하는 경우에도 적합성 진단 절차를 밟아야 한다. 본인 의사에 따라 상품 트렌드 등을 살펴보기 위해 상품 목록을 단순 확인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적합성 진단 절차를 진행하다 상품가입을 포기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고난도 투자상품은 출시과정부터 불리한 경쟁에 놓인다.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은행권에만 존재하는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이 생긴 영향이다. 은행 관계자는 "상품 하나하나에 대한 판매 여부를 이사회에서 승인받는 등 일반 공모펀드 하나를 출시하는데 평균 2개월이 소요된다"며 "같은 상품을 증권사에서는 빠르게 론칭하고 판매하지만, 은행권에서만 거래하는 고객들은 상품 선택권을 침해받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고난도금융투자상품 제조 및 판매에 관한 표준영업행위준칙'에 따라 은행이 사모펀드 운용사의 운용행위 점검 책임도 부담하고 있다. 은행 등 판매사는 펀드 운용이 핵심상품설명서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사후적으로 확인하고, 부적절한 운용행위를 발견하면 직접 시정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에 감독당국의 역할까지 지운 셈이다.
반면 소비자보호 인력과 관련된 당국의 기준은 모호하다. 준거 기준이 없어 인력 확충에 한계가 있다. 소비자보호 내부통제 전담인력과 관련된 별도 기준이 없기 때문에 실제 채용 인력이 적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보호 전담인력의 전문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없다. 은행이 전담인력을 강화하고 싶어도 전문성 제고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역시 전담인력 전문성에 대한 별도 기준이 부족한 탓이다.
소비자보호총괄부서의 독립성과 전문성 등 전반적으로 거버넌스 체계가 미흡한 점도 문제다. 한 은행의 사외이사는 "금소법 시행에 따라 금융사들은 소비자보호를 총괄하는 임원인 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를 선임해야 하지만, CCO의 임기가 1년 이하인 회사의 비중이 다수이며, 지주회사의 경우 자회사, 관계사의 CCO 등을 겸직해 역할이 제한적이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원칙' 중심의 규제로 개선해야한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규정 중심 규제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혁신이 중요한 금융산업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최성일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금소법에서 적합성 원칙은 객관적으로 절차를 증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설명하고 동의하는 절차 위주로 이루어진다"며 "금융회사는 책임을 피하기 위한 절차를 만들게 되고,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이 많아진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위원은 "금융 혁신 속도가 점점 빨라지므로 단순하고 유연한 원칙 중심의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며 "금융사는 규제를 회피하는 전략이 아니라 실질적인 소비자보호를 위해 어떠한 영업전략을 사용해야하는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금융소비자의 금융교육을 강화하고, 자기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소비자보호와 관련해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며 "소비자보호 기구를 만들고, 금융당국이 관리감독하는 것도 비용인데, 소비자보호 책임과 그에 따르는 비용을 일방적으로 금융사에 전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금융소비자가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과 기업어음(CP), 주가연계증권(ELS) 등의 투자상품을 구분 못하는 것도 문제"라며 "금융소비자가 더 현명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고 투자에 대한 자기 책임도 강화하면서 소비자보호 규제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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