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자회사 하만이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를 대거 확보하며 글로벌 오디오 사업 강화에 본격 나섰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선 것은 2017년 약 9조원을 투자해 하만을 인수한 이후로 8년 만에 사실상 처음이다.
하만 인터내셔널은 6일(현지시간) 미국 마시모(Masimo)의 오디오 사업부문을 3억5000만달러(한화 약 5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하만은 '바워스앤윌킨스(Bowers & Wilkins·B&W)', '데논(Denon)', '마란츠(Marantz)', '폴크(Polk)',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Definitive Technology)' 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오디오 브랜드를 품에 안게 됐다.
하만은 JBL, 하만카돈(Harman Kardon), 마크레빈슨(Mark Levinson), AKG, 인피니티(Infinity) 등 기존 브랜드에 이번 프리미엄 라인업을 더해, 명실상부한 '오디오 명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번에 인수한 B&W는 1966년 영국에서 설립된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로, 고급스러운 소재와 독창적인 디자인, 정교한 음향 기술로 오디오 전문가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B&W의 대표작인 라우드 스피커 '노틸러스(Nautilus)'는 개당 가격이 1억5000만원에 달하며, 무선 스피커 '제플린(Zeppelin)',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PX7 시리즈 등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다른 인수 브랜드인 데논은 1910년에 설립된 일본의 오디오 브랜드로, 상업용 CD플레이어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 기업 중 하나다. 마란츠는 1953년 미국에서 설립된 오디오 전문 브랜드로, 프리미엄 앰프와 리시버 제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만은 이번 인수를 계기로 컨슈머 오디오 시장과 카오디오 사업 전반에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하만은 지난해 포터블 오디오 시장에서 약 60%의 점유율로 글로벌 1위를 기록했으며, 무선 이어폰과 헤드폰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컨슈머 오디오 시장은 2025년 608억달러에서 2029년 70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하만은 인수 브랜드들을 기존 라이프스타일 사업부문과 통합해 이 시장에서의 글로벌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카오디오 부문에서도 하만은 B&W를 비롯해 기존 하만카돈, JBL, 마크레빈슨, AKG, 뱅앤올룹슨(Bang & Olufsen) 등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차량별 맞춤형 음향 경험과 고급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다.
하만 라이프스타일 사업부 데이브 로저스 사장은 "하만은 75년 역사의 오디오 전문기업으로, 여기에 B&W를 더해 세계 최고의 오디오 명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는 삼성전자의 모바일·TV·가전 제품과의 시너지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삼성전자는 그간 하만의 사운드 기술을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무선 이어폰, 사운드바 등 제품에 적용해 음향 품질을 높여 왔다.
삼성전자는 B&W, 데논, 마란츠 등의 프리미엄 오디오 기술을 향후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 TV, 무선 헤드폰 등 전 제품군에 확대 적용해 고급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자사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Things)'와 연동한 프리미엄 오디오 환경 구현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마시모 측도 오디오 사업부의 하만 이관이 브랜드 성장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케이티 시맨 마시모 최고경영자(CEO)는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으로, 오디오 사업부는 하만의 전문성과 글로벌 네트워크 아래에서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만은 이번 인수 절차를 연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최근 수년간 인공지능(AI), 네트워크, 의료영상, 오디오 등 첨단 분야 스타트업과 전문 기업 인수를 지속해 왔다.
2016년 삼성전자는 캐나다의 차세대 통신 기술(RCS) 전문 기업인 '뉴넷 캐나다'를 인수했고, 2017년에는 문자 음성 변환 기술(TTS) 기반의 그리스 스타트업 '이노틱스'와 인공지능 기반의 대화형 응답 시스템(챗봇)을 개발하던 국내 기업 '플런티'를 인수했다.
2018년에는 네트워크 트래픽과 서비스 품질을 분석하는 전문 솔루션 기업인 '지랩스'를, 2019년에는 듀얼 및 멀티카메라 광학 기술을 개발하는 이스라엘 기업 '코어포토닉스'와, 인공지능 기술로 음식 정보를 분석·추천하는 영국의 식품 솔루션 스타트업 '푸디언트'를 인수했다.
2020년에는 이동통신망 설계와 최적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미국의 네트워크 전문 기업 '텔레월드 솔루션즈'를 인수하며, 5세대 통신(5G) 및 통신 장비 경쟁력도 강화했다.
2023년에는 하만을 통해 독일 AR 헤드업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 기업 '아포스테라'와 오디오 플랫폼 기업 '룬'을 인수했고, 2024년에는 삼성메디슨이 프랑스 산부인과 영상 분석 스타트업 '소니오'를 인수했다. 같은 해 북미 유통기업 레녹스와의 합작법인 설립, 지식그래프 기술을 보유한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 인수도 진행했다.
이 같은 일련의 M&A는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경쟁력 외에도 AI, 오디오, 영상 진단, 스마트홈 등 기술 융합 생태계를 주도적으로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