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화양동 화양초등학교가 2023년 폐교된 이후 새로운 역할을 찾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폐교 활용 계획에 내용을 반영하지 않았고,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6일 화양초 인근 주민들은 폐교 부지에 2026년 12월 개관 예정이었던 화양미래교육문화원 대신 공공기숙사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도서관과 체육시설 등을 원한 주민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 결과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폐교의 활용이 제때 이뤄지지 못해 인근 지역이 활기를 잃은 데 이어 지역 주민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불만이 크다.
연로한 화양동 주민들은 지금까지 인근 대학교 학생들에게 월세를 받는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화양초 폐교 부지에 기숙사가 들어올 경우 집을 월세방으로 개조하면서까지 준비한 노후가 망가진다는 게 주민들이 폐교 활용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화양동 주민 박창옥씨(73·남)는 "대학생의 거주 공간은 중요하지만 그들도 결국 몇 년 머물다 가는 외지 사람"이라며 "주민을 위한 공간도 아니면서 오히려 주민의 주 수입원을 빼앗아가는 곳이 들어온다는데 환영할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폐교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주민들의 의견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서울시는 일찌감치 화양초등학교 폐교를 염두에 두고 2021년 용역을 통해 '학교 이적(예정)지·폐교 활용 모델 및 기본구상 수립' 보고서를 작성했다. 시교육청과도 폐교를 활용하기 위해 9차례 협의했다.
용역 조사에는 공공주택 또는 산업복합시설 조성이 활용안으로 담겨 있다. 보고서는 화양초 부지에 공공주택을 짓는 것에 대해 "1인 및 2인 가구가 많은 지역 특성과 건국대, 세종대를 비롯해 양호한 광역 접근성 등을 고려해 공공주택을 조성한다"며 "대상지를 둘러싸고 있는 저층 주거지역을 고려한 주변 지역과 조화로운 공간을 계획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보고서에는 주민들이 생활 사회간접자본(SOC)을 원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보고서는 2021년 1월4~6일 화양초 통폐합과 관련해 학부모들의 의견을 물은 결과 지역도서관, 학생 체험시설, 생활체육공간 등 주민복지시설, 주차장, 공원 등 부족한 시설을 확충해주길 원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광진구청도 도시공원 조성, 공공도서관, 체력증진센터 건립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해 교육부, 시교육청, 광진구 등과 함께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고 '행복 기숙사' 건립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행복 기숙사는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대학생을 위해 저렴한 기숙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시교육청은 주민을 설득하기 위한 간담회를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진행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시와 실무협의체를 통해서 공공주택과 관련해 계속해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폐교 활용 문제를 두고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서울시와 시교육청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원래 시교육청은 광진구와 (화양동 폐교 부지에) 화양미래교육문화원을 짓기로 했는데 광진구가 재원이 없어 포기했다"며 "이후 서울시는 공공 기숙사를 이야기했고 국무조정실에서 유관기관과 함께 논의해 화양초 폐교 부지를 골랐다. 시교육청은 결정 권한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시교육청에 폐교 부지를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폐교를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는데 시교육청 책임이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폐교 활용 계획을 수립하는 건 시교육청"이라며 "화양초 폐교 부지에 행복 기숙사를 짓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과 주민 반발 등은 시교육청이 맡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시 측은 "현시점 화양초 폐교 부지와 관련된 기관들이 협의하고 있는 단계"라며 "주민들이 (폐교 부지 활용과 관련해) 기대하는 게 있어 잘 담기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폐교 활용을 추진하는 당국이 지역 주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계속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학교라는 공공시설이 그 지역에 주는 의미가 크다. 학교가 사라진 지역사회에 이익을 가져올 만할 시설을 원하는 주민의 반발은 당연하다"며 "이런 갈등을 푸는 방법에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결국 지자체와 주민이 자주 소통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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