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긴 줄서는 화장실 가야 하나" 여성용 이동식 소변기 발명[기업연구소]

⑧여성용 이동식 화장실 만드는 라피
전 세계 25개국에 설치…작년 매출 2배↑
올림픽·페스티벌·난민수용소 어떤 곳에서도 쉽게

편집자주우리나라 기업의 연구·개발(R&D) 지출 규모와 미국 내 특허출원 건수는 각각 세계 2위(2022년)와 4위(2020년)다. 그러나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년부터 10년간 연평균 6.1%에서 2011년부터 2020년 사이 0.5%로 크게 낮아졌다. 혁신 활동에 적극적인 기업인 '혁신기업'의 생산성 성장이 둔화했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다면 기업은 시장으로부터 외면받는다. 산업계가 혁신 DNA를 재생할 수 있도록 해외 유명 기업들이 앞서 일군 혁신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침체된 한국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마중물은 혁신기업이 될 것이다.

"페스티벌 현장에서 여성들의 상황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하루에 20번 정도 화장실을 가야 할 때도 있는데, 더럽고 긴 줄이 늘어선 화장실을 감당해야만 하죠. 긴 줄을 서느라 콘서트를 놓치거나 친구들과도 떨어지게 됩니다. 때로는 억지로 참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상황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남성용 이동식 소변기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여성용을 디자인했습니다."


여성용 이동식 소변기를 만드는 라피(Lapee)를 창업한 지나 페리에 대표는 최근 아시아경제와 서면 인터뷰에서 "남성용 이동식 소변기는 곳곳에 널려 있는데, 왜 여성용 제품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제품 출시의 배경을 설명했다.

덴마크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페리에 대표는 유럽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 중 가장 큰 '로스킬데 페스티벌'에서 설치될 작품을 설계하고, 만들고 있었다. 이때 화장실을 가기 위해 줄 서 있는 여성들이 보였다.


2019년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한 여성이 라피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라피 홈페이지

2019년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한 여성이 라피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라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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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리에는 2017년 로스킬데 페스티벌에서 함께 건축을 담당했던 알렉산더 에게베르그와 함께 라피를 설립했다. 회사 이름 라피는 프랑스어로 '소변(piss)'을 뜻한다. 2018년 첫 시험을 마친 제품은 2019년 5월 첫 상용화에 성공했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거리에서 열리는 디스토션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라피를 이용하지 않고 일반 화장실을 이용했다면 대기 시간이 6배로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라피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완전히 변기에 앉지 않는다.스쿼트 운동을 하듯 쪼그려 앉으면 하반신은 가려지고 상반신 중 머리 일부만 노출된다. 외벽 높이가 165cm로 쪼그려 앉으면 신체 대부분이 가려진다. 페리에 대표는 "빠르게 일을 보는데 충분한 가림막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라피는 제품에 분홍색 옷을 입혔다. 야외 어느 공간에 설치돼도 잘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페리에 대표는 "핑크는 과학적으로 먼 거리에서도 가장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색"이라면서 "여성들에게 안전한 화장실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적인 장소에서도 라피를 멀리서도 쉽게 찾고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제품은 탱크 용량에 따라 사용 횟수가 늘어난다. 기본적으로 1100ℓ(리터) 탱크에 연결하면 3500회 사용이 가능하다. 직접 하수관에 탱크가 연결되면 사실상 무한대 용량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제품 소재도 100% 순수 폴리에틸렌으로 제작돼 재활용이 가능하다.


라피는 현재 전 세계 25개국에 설치돼 있다. 주로 유럽 국가가 중심이지만 호주, 캐나다, 콜롬비아에도 있다. 아시아에서는 몽골에 설치됐으며 곧 중국에도 라피가 상륙할 예정이다. 라피는 유로비전, 올림픽, 유로피언 챔피언십을 포함해 약 350여개 이벤트에 참여했다. 야외 이벤트뿐만 아니라 난민 수용소 등과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사용됐다.


페리에 대표는 "지난해 매출은 2023년에 비해 2배로 증가했다"면서 "올해는 투자금 조달을 진행 중이며 회사 몸집이 5배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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