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화두된 '자사주 소각'…지배력 강화 수단 벗어날까

자사주 취득 늘었지만 소각 계획 소극적
지주사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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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자사주 소각 제도화를 언급하면서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전락한 자사주의 소각을 의무화하는 것이 주주환원 효과를 극대화하는 길이란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날까지 발표된 자기주식 취득결정(신탁계약 제외) 공시는 93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가량 늘었다. 1분기 자사주 소각 규모 역시 전년 동기 대비 86% 증가해 10조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주주환원 목적으로 자사주를 보유한다고 밝힌 94개 기업 중 절반 이상(약 60곳)은 구체적인 소각·처분 계획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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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올해부터 자사주 보유 비중이 5% 이상인 기업은 자사주 소각 등 향후 처리 계획을 공시하도록 하고, 인적분할 또는 합병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금지했다. 유통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 개선과 주가 부양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자사주를 보유한 기존회사가 신설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출연 없이 확보하는 '자사주 마법'을 견제한다는 목적이다.

그러나 이처럼 자사주 관련 공시의무가 발생한 기업의 상당수가 구체적인 소각 계획을 내놓지 않거나 "향후 검토해 실행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보통주 기준으로 자사주 24.8%를 보유한 SK를 비롯해 롯데지주·한화·CJ·등 주요 지주사들 역시 자사주 소각 계획이 검토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사주의 경제적 본질에 부합하도록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환원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장기업은 2.3%에 불과할 정도로 드물다"며 "자사주를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지배주주의 우호적 주주에 매각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제도개선이 시행됐음에도 기업들은 취지와는 다르게 이사회의 형식적인 검토 및 승인 등으로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공시하고 있다"며 "이는 자사주가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점을 노린 상장사들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시장 내 의결권 있는 주식을 감소시켜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시장은 이 후보가 내건 상장사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론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이 연구원은 "이번 대선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주주들의 자사주 소각 요구도 커질 것"이라며 자사주 보유 비중이 큰 상장회사들은 압박을 느껴 요구에 응답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자사주의 자산성을 인정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방치한다면 지배주주가 자사주를 마음대로 활용할 유인이 남아 자사주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사주의 취득은 곧 소각을 의미해야 경제적 실질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지배주주의 자사주 남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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