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 의도는 달랐다

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저자는 동서양 철학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태동부터 포스트구조주의까지, 유학의 탄생부터 양명학까지, 탈레스와 소크라테스, 노자와 공자부터 칸트와 헤겔, 쇼펜하우어와 니체,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까지 동서양 유명 철학자에 관한 알아두면 유용한 지식을 전한다. 동서양의 주요 사상을 정립한 철학자의 생애와 사상의 기봄 개념과 대표 저작, 당시 배경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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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종교를 단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탄생해서, 인간 사회의 합리성에 대한 필요와 열망을 채우기 위해 독자적인 길을 획득했다. 그 과정에서 철학의 복잡성을 해결하고자 이분법적 세계관을 형성했다. (…)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아예 그동안 인간 사회를 지배해온 이분법적 이항대립의 언어 개념 구조, 윤리 구조, 존재 구조를 모두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물론 여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논쟁과 투쟁, 때로는 폭력을 불사하는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런 치열한 갈등은 모두 인류가 보다 정교하고, 보다 생존에 유리한 행동 지침을 얻기 위한 탐구의 일환이었다. 그러한 진리 탐구에 대한 열정의 역사가 곧 철학사이고, 그 철학사를 이끈 슬로건의 합이 곧 철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철학사가 곧 철학이라 할 수 있다. <16쪽>

흔히 쾌락주의자라고 하면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퇴폐적인 인간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그 같은 쾌락과는 담을 쌓은 인물이었다. 한때 사람들은 "그대는 내일이면 죽을 것이다. 그러니 먹고 마시고 즐기라!"는 구호를 부르짖는 무리라며 에피쿠로스주의자를 비방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그들과 적대 관계에 있던 스토아학파 사람들이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욕망을 철저하게 차단하며 살았다. 진정한 즐거움이란 숱한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신을 평화로운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101~102쪽>

맹자의 말인즉, 혜왕이 비록 굶주리는 백성을 보살피기는 했으나 백성 입장에서 보면 그런 행동이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 "사람을 죽임에 있어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게 다릅니까?"
"죽인다는 점에서는 같은 일이지요."
"그러면 칼로 사람을 죽게 하는 것과 정치를 바르게 하지 못해서 백성을 죽게 하는 것은 다릅니까?"
"그것 또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왕은 어찌하여 백성을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까?" <186~187쪽>

순자의 이런 주장은 맹자의 성선설과 근본적으론 다르지 않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 속에 인의예지 사단이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선한 행동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단을 발전시켜 몸에 완전히 익히면 성인이 된다고 했다. 한편, 순자는 비록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예와 법을 지켜 인의를 실천하고 그것을 몸에 축적해 승화시키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선 맹자와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성인이 되는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같은 것이다. <196쪽>

그런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고로(ergo)'는 사실 데카르트가 사용한 말이 아니다. 이 접속사는 데카르트의 말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삽입되었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생각'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데카르트에게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존재로서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를 통해 신을 증명하려 했다. <300쪽>

과거의 모든 사상과 문화, 전통과 체계를 니체는 거부했다. 오히려 과거의 모든 것은 쳐부숴야 할 적이었다. 그래서 기독교와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철학과 관습, 계층과 계급 등 모든 것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대변하는 말이 바로 "신은 죽었다"이다. 신이 죽었으므로 그동안 신에 의해서 지탱되던 모든 것도 함께 죽었다. 신을 떠받치는 철학과 신을 위한 역사와 신의 문화, 그리고 신에 대한 신앙, 교회, 관습 등 모든 세계가 함께 죽은 것이다. (…) 신이 죽었으므로 참인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 의무는 없어지고 의지만 남는다. '나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무 의식을 벗어던지고, '나는 뭔가를 하고자 한다'는 자유의지를 취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거부되는 현실, 이것이 곧 그의 허무 의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허무주의는 초인을 통해 극복된다. <383쪽>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구조주의를 인류학뿐 아니라 모든 사회과학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조주의는 언어학에서 사용하는 기호학 이론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기호학에서 음운학자들이 소리의 어떤 차이가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고 또 만들어내지 못하는가에 관심을 가지듯이, 인류학이나 인문과학·사회과학은 특정 생활 물품이나 행동에 대해 어떤 차이가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고 또 만들어내지 못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 "인류학은 기호학의 한 분야에 불과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기호학을 바탕으로 한 구조주의에 따라 모든 학문의 혁명을 주문한 것이다. <452~453쪽>

차이가 없는 세계는 개별성이 없는 세계이고, 개별성이 없는 세계는 개인이 없는 세계이고, 개인이 없는 세계는 죽은 세계이다. 이항대립의 동일성 안에서는 같지 않으면서 같아야 하고, 의견이 다르면서 같아야 하고, 맛이 있거나 없거나 그저 사과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동일성의 철학은 차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개별성을 완전히 상실하는 결과를 낳는다. (…) 이항대립의 동일성 중심의 인식에서는 개별성의 본질인 차이가 존중받기는 고사하고 제거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사회에서 다양성을 제거하는 결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소수 또는 약자의 입장과 시각은 항상 제거해야 할 악으로 간주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483쪽>

동서양 철학 신박한 정리 |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만28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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