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 하나 남기지 않고 몽땅 타버렸다."
지난달 27일 기자가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에서 만난 산불 이재민 심효섭씨(68)의 한탄이었다. 심씨는 40년 넘게 살았던 집과 700평짜리 복숭아밭을 화마에 잃었다. 가재도구는 물론 농사에 쓰려던 퇴비까지 몽땅 타버렸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첫날은 '살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컸지만 시간이 갈수록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불안감은 또 다른 재난으로 다가왔다고 심씨는 말했다.
영남을 휩쓴 산불로 주택 3819채가 불에 탔고 이재민 3773명이 생겼다. 이재민들은 주로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호텔, 연수원, 체육관 등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다. 산불 피해가 특히 심각했던 경북 의성군 구계2리는 40여채 주택에 주민 6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주택 30여채가 소실됐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아직도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자녀 집이나 모텔 등에서 지내고 있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재민들의 일상도 함께 멈춰 섰다. 평소 하던 농사나 생업을 중단한 채 언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불타버린 집만 잃은 게 아니라 삶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다. 집이란 단지 사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삶의 연속성을 보듬어주고 지켜주는 기둥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재민들을 위해 경북도와 각 지자체는 임시주택 2692동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치된 임시주택은 70여동에 불과하고 입주가 끝난 임시주택도 4가구에 그친다. 이달 말까지는 임시주택 전체 공급 물량의 44%를, 다음 달 말까지는 나머지를 모두 공급할 계획이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산불 사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재난 시 일정 기간 머무를 수 있는 임시주거시설에 대한 준비가 부실하다. 재난 대응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과 대비된다. 일본은 지진과 태풍이 빈번한 탓에 임시 주거 시스템이 체계화돼 있다. 일본 지자체들은 언제든 쓸 수 있는 이동형 주거 모듈을 갖춰놓고 있고, 민간 숙소와의 협약을 통해 이재민들에게 긴급하고 실질적인 거주지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반려동물을 위한 시설까지 마련돼 있다고 한다.
우리도 1~2주 임시로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1개월 이상 생활 가능한 환경을 갖춘 주거지 형태의 임시시설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에 따라 이재민 임시 주거 공간을 확보하거나 민간 시설을 활용하게 돼 있지만 일본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재난 시 자동으로 '공공주택 전환 매뉴얼'이 가동되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재난을 당한 이재민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 주는 일은 단지 몸을 누이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일상을 회복하고, 삶을 재건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만들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재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일 수 있지만 재난 이후 사람들이 겪게 될 고통은 줄일 수 있고, 막을 수도 있다.
산불, 홍수,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이제는 재해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놓고, 정책을 짜야 할 시점이다. 더는 "재난을 피해 대피했는데, 이재민이 갈 곳이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