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시험 이른바 '7세 고시'가 성행할 정도로 한국의 영유아 사교육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7세 고시를 심각한 '아동 학대'로 규정해 달라는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접수됐다.
16일 국민 1000명으로 구성된 '아동 학대 7세 고시 국민 고발단'은 서울 종로구 인권위 앞에서 '아동 학대 7세 고시 폐지'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 당국의 강력한 제재와 영유아 사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촉구했다.
고발단은 "영어학원 입학을 위한 시험이란 명목으로 만 6세 아이들이 영어 문장을 외우고 인터뷰를 준비한다"며 "7세 고시가 퍼뜨리는 불안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 두려운 부모들은 앞다퉈 사교육을 선택하게 되고 결국 유아 교육 전반이 선행학습 경쟁에 휘말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7세 고시가 아동 학대 이상의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규정하고 교육 당국이 강력히 제재하도록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최근 학원가에서는 '7세 고시'란 말이 유행 중이다. 이는 미취학 아동이 유명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시험을 일컫는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해 7~9월 만 6세 미만 영유아 가구 부모 1만3241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 결과 전체 사교육 참여율은 47.6%로 영유아 두 명 중 한 명은 사교육을 하고 있었다. 사교육비 총액은 8154억원이었으며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이었다. 만 5세 어린이는 10명 중 8명꼴로 사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평균 사교육비는 43만5000원으로 나타났다.
외신은 한국의 이 같은 과도한 조기 교육 시장이 전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출산율에도 영상을 줬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16일(현지시간) "한국의 학문적 경쟁이 6세 미만의 절반을 입시 학원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한국의 부모들도 이러한 사교육 부담에 대한 불만이 크지만 동시에 자신의 자녀가 뒤떨어지는 것은 두려워 사교육을 택한다"고 보도했다.
FT는 "한국의 과한 사교육비 지출이 심각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한국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최고의 대학과 몇 안 되는 대기업에서의 고소득 일자리를 위한 강도 높은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학원에 의존한다"고 봤다. 영국 BBC도 "한국은 4세부터 수학, 영어, 음악, 태권도 등 다양하고 값비싼 과외 활동에 참여한다"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과도한 교육 시스템이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 영유아 사교육 시장은 외국 학자도 혀를 내두르게 했다.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E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2022년 기준 합계 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얘기를 들은 후 "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라며 머리를 부여잡기도 했다.
과도한 사교육 열풍은 풍자 소재가 되기도 한다. 최근 개그우먼 이수지는 아이 교육에 목을 매는 '대치동 엄마'를 캐릭터로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교육열이 높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살고 있는 엄마 '제이미맘'으로 분한 이수지는 자신의 4살 자녀 제이미를 학원으로, 과외로 실어 나르기 바쁘다. 그는 학원에 바래다주고 외제 차 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자녀의 제기차기 과외 교사를 구하기 위한 면접을 본다. 자녀의 영재성을 자랑하던 중 배변 훈련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이수지가 연기한 이 인물은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0분 분량의 영상 2편은 한 달 만에 조회 수 1270만회를 기록했다.
한편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 감소에도 지난해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를 또 경신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의 27조1000억원보다 2조1000억원 증가했다. 2007년 사교육비 조사 이래 최고치다. 사교육 참여 학생 비율 역시 전년도보다 1.5%포인트 오른 80%로 역대 최고치였다. 지난해 학생 수는 513만 명으로 전년보다 8만명 줄었음에도 사교육비는 역대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특히 정부가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킬러 문항 배제, 초등생 늘봄학교 도입 등을 추진했지만 의대 증원 방침 등으로 오히려 사교육 시장을 과열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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