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개정안이 17일 국회 재표결 결과 최종 부결됐다. 법안 상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찬성표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 조항을 삭제하면서 개정안을 다듬었으나 결국 부결 후 폐기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재표결 결과 총투표수 299표 중 찬성 196표, 반대 98표, 기권 1표, 무효 4표로 최종 부결됐다. 앞서 지난 1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상법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199명)의 동의를 얻어야 통과되지만 이날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폐기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상장회사가 총회와 함께 전자주주총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했다.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관련 법안이 부결된 만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 안건과 함께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 투표제' 등 조항까지 포함해 재발의할 계획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조항은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대신,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출하는 제도다. 이는 대주주의 견제로부터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1주당 선임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이사 세 명을 선출할 경우 1주를 보유한 주주는 3표 행사가 가능하며, 특정한 한 명에게 몰표를 줄 수 있다.
그동안 상법개정안을 반대해온 재계는 이날 법안 폐기로 한숨 돌리게 됐으나 안심하긴 이르다. 민주당이 3개 조항을 모두 담은 상법개정안 재발의를 통해 법안 통과를 강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상법개정안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액주주 권익을 개선하기 위해 꼭 개정해야 할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우리 증권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는 상법개정안 중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개정안의 의도와 달리 헤지펀드들이 단기수익을 올리기 위해 제도를 악용해 주주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이날 윤석열 정부에서 거부권이 행사된 8개 법안은 재표결 결과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재의의 건'만 가결됐다. 상법개정안 외에도 ▲내란특검법 ▲명태균특검법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법 개정안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 등은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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