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만에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앞서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며 같은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법률에 대한 최종적 해석권을 가진 사법부가 위헌성을 지적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헌법재판소법상 형벌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은 소급효가 있기 때문에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더라도 재심을 청구해 구제받을 수 있다.
지난달 13일 부산지법 형사4-3부(재판장 김도균, 성익경, 김지철 부장판사)는 헌재에 중대재해처벌법 3개 조항의 위헌성을 판단해달라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조항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재해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를 규정한 법 4조 1항 1호와 제3자에게 도급이나 용역을 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4조가 정한 조치를 할 의무를 정한 5조, 그리고 이들 의무를 위반해 사망자가 1명이라도 발생하는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6조 1항이다.
문제가 된 사건은 지난 2022년 부산에서 처음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으로 주차타워 내부 단열공사를 하도급받은 업체 소속 근로자가 작업 도중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도급을 준 회사 대표 A씨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는데, 2심 재판부가 A씨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였다.
결정문에서 재판부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 책임주의, 평등원칙, 명확성원칙에 반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보다 전문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타인에게 업무를 맡긴 도급인 등에게 해당 공정에서 발생한 모든 중대재해에 관해 가혹할 정도의 형사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도급계약, 위임계약의 법리를 정면으로 부정해 그 존재의의를 몰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헌법상 시장경제 원리는 계약자유와 사적자치의 원칙을 핵심으로 삼고 있으며, 이 원칙은 사법질서를 지배하는 지도 원리로 작용한다"며 "이를 규제하려는 경솔한 시도는 법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체계를 무너뜨리며, 지엽적인 이익을 위해 시장경제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어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기업의 경영자가 전 사업장의 모든 공정을 세세하게 알기 어렵고, 설령 경영자가 전문적, 기술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공정을 직접 통제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그럼에도 중대재해가 발생한 결과만을 놓고 기업의 경영책임자에게 지속적으로 엄혹한 형사책임을 추궁한다면 결국 대부분의 경영책임자가 형사책임을 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고, 이로 인해 유능한 경영자가 경영 현장에서 축출되거나 심지어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은 충분히 예상된다"고 했다.
이 밖에도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치사죄와 구성요건이 같은 데도 법정형만 대폭 상향해 처벌하도록 한 것은 형벌체계상 균형에 맞지 않고 ▲재해로 발생한 피해 구제 방법으로는 징벌적 손해배상 인정 등이 훨씬 효과적이며 ▲수급인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인 경우 실제 사고 발생의 책임이 있는 수급인이나 과실행위자보다 도급인이 오히려 무겁게 처벌되는 것은 형평에 반하며 ▲불확정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그 구체적 의미를 대통령령에 전적으로 위임해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첫 기소 사건인 두성산업 사건을 비롯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적은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법원이 위헌성을 인정해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헌재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2건의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해 왔는데, 사실상 이번 위헌법률심판 사건과 심판대상이나 쟁점이 겹치는 만큼 사건을 병합해 심리한 뒤 함께 선고할 가능성도 있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위헌 제청 사건 포함 현재 3건이 계류 중"이라며 "사건을 병합할지, 아니면 병행심리할지는 평의를 거쳐 재판부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형사재판 도중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적용된 법률에 대해 헌재에 위헌 제청을 하면, 헌재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재판은 정지된다. 다만 위헌 제청의 효력은 당해 사건에 그치기 때문에 다른 사건의 재판은 그대로 진행된다.
만일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게 되면 처벌의 근거 규정이 없어지므로 재판 중인 사건은 모두 무죄가 선고된다. 이미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라도 소급해서 처벌 조항이 무효가 됨에 따라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을 수 있다.
물론 헌재가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안정성을 위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소급효를 제한하면서 법 개정 시한을 두는 것도 가능하지만, 과거 헌재가 집시법상 처벌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을 때 법원에서는 단순 위헌 결정에 준해 재심을 허용한 전례가 있다.
대법원과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시행 이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건수는 2022년 11건(12명), 2023년 23건(45명), 2024년 40건(63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 기소 건수도 16건에 달한다.
3월 말 기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피고인의 1심 유죄 판결 건수는 40건, 유죄 확정 건수는 20건인데, 대부분 집행유예나 재산형이 선고됐고,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2건에 그쳤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재판 결과가 확정돼 노동부에 통보된 15건과 관련된 경영책임자 15명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이 중 1명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14명은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같은 결과는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처벌 조항의 법정형이 상한이 열려 있는 '1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히 선고형이 가벼웠다고 볼 수 있다.
근로자들과 노동단체들은 법 시행 이후 건설 현장 등에서의 사망 사고가 줄었다며, 보다 엄격한 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검찰이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기업 오너나 대표이사들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는데 소극적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기업, 특히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직접 통제가 어려운 하청업체 실무자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사실상 원청 대표에게 결과책임을 지우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의 경우 사전에 로펌의 자문을 받아 중대재해와 관련된 사법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사실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사고 현장에 나가 보면 어떻게든 법이 정한 기준을 준수하려고 노력한 곳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이는 열악한 곳도 있다"며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대기업 경영책임자는 입건도 많이 안 되고, 상시 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YK 중대재해센터장을 맡고 있는 조인선 변호사는 "사업장의 안전의식을 고취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고자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는 매우 중요하고 사회적으로 관철돼야 할 가치지만, 방법론적으로는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형사처벌 외에 외국 사례처럼 과태료 부과처분 등 행정제재의 방법을 택하는 방안이나 작업중지명령 해제신청 시에 사업장 안전진단과 의식개선 등에 대한 심도 깊은 검토를 진행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개정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이와 같은 개정이 곧바로 이뤄지기 어려울 경우 죄형법정주의와 과잉금지 원칙, 민법상 도급인의 책임을 제한한 규정과의 체계정합성 등을 고려해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에 부합하는 법령의 정비가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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