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감국가 발효 '韓 핵무장론' 경고 차원일까

"韓 방첩 역량 불신 등 불만·의심 표면화한 것"
과학기술계 영향 촉각, 이스라엘·대만도 리스트에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올린 조치의 효력이 15일(현지시간) 발생한 가운데 직접적 영향이 우려되는 과학기술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DOE는 산하 17개 국립연구소를 통해 인공지능(AI)·원자력·양자 등 각종 첨단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어 한국과 미국이 현재 진행 중인 첨단기술에 대한 협력과 공유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SCL)에 등재한 미국 에너지부(DOE). 연합뉴스 제공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SCL)에 등재한 미국 에너지부(DOE).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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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국가는 미국의 국가 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국가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을 이유로 지정될 수 있다. 미국의 동맹국 중에서는 한국 외 이스라엘과 대만도 리스트에 올라있다.

한국의 DOE의 민감국가 리스트 등재는 트럼프 정권 2기 출범 전후 부쩍 목소리가 커진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 한국 연구원들의 규정 위반과 신뢰할 수 없는 한국의 방첩 역량에 대한 우려라는 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DOE 산하 연구시설에 출입하던 한국 연구원이 원자로 설계도를 반출하려다 적발됐다거나, 한국과 협력했다가 정보가 다른 국가(특히 중국)로 새어나갈 수 있다는 한국의 방첩 역량을 신뢰할 수 없어 리스트에 올렸다는 설,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 미국 기업과의 분쟁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 등이 있다"면서 "결국 최근 한국의 행보에 대한 경고의 의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1980년대와 1990대 한국에서 핵무장론이 발호할 때마다 민감국가 리스트에 등재됐다. 공식 확인된 것은 1986년 1월~1987년 9월, 1993년 1월~1996년 6월 두 차례이고, 1981년 처음 민감국가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정권의 핵무장 추진과 사회적 혼란이 리스트에 오른 원인이었고, 1991년 한반도 비핵화선언도 민감국가 탈피를 위한 한 방안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에 대한 불만이나 의심을 표면화한 것으로 본다"면서 "당장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향후 추진될 연구협력에서 불편한 일들이 발생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DOE는 바이든 정부 때인 지난 1월초 한국을 SCL에 '기타 지정 국가'로 추가했고 이날부터 이 조치의 효력이 발생한다.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DOE 산하 연구소 방문 시 최소 45일 전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하며, 미국 에너지부 직원이나 소속 연구자가 한국을 방문하거나 접촉할 때도 추가 보안 절차가 적용된다.


DOE 산하 주요 연구기관과 기술 분야에서 협력 중인 국내 기관들은 이미 45일 전 승인과 같은 규정을 지키고 있어 민감국가 지정이 미치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까지 정부출연연구기관 등도 예정된 미국 에너지부와 협력을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4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아르곤국립연구소(ANL) 본부에서 DOE 산하 ANL과 원자력 기술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선진 원자로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원자력 연구개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최근 전략기술로 꼽히는 소듐냉각고속로(SFR), 가상원자로 공동연구 등 차세대 원자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새로 추가하는 등 안보기술 관련 협력에도 별다른 영향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산하 출연연이 미국 에너지부 및 산하 연구기관과 현재 9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예산은 120억원 규모다. 다만, 과학기술계는 향후 새로운 협력, 특히 핵 관련 분야에서 SCL이 최소한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DOE는 민감국가 지정 사유를 밝히지 않는다"면서 "다만, 앞서 언급한 여러 설이 나오고 있는 만큼 협력 중이거나, 향후 협력을 추진할 때 더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정부는 미 에너지부와 실무 협의를 이어가며 민감국가 해제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실무 협의에서 연구 협력을 진행 중이거나 향후에 이뤄질 경우 장애 없이 지속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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