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비중의 급격한 증가로 초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소아 중심으로 구조가 짜인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을 고령층으로 적극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많게는 수 십만원 선에 이르는 예방접종이 다수의 고령층 국민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1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현재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NIP는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 두가지뿐이다. 반면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필수예방접종은 19가지에 달한다. NIP란 감염병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예방접종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어린이 NIP ▲HPV NIP ▲B형 간염 수직감염 예방 사업 ▲인플루엔자 NIP ▲어르신 폐렴구균 국가예방접종사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고령층은 경제적 이유로 제때 백신 접종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례로 다음 달부터 유행을 시작하는 대상포진이 있다. 대상포진은 매년 5월부터 8월까지 유병률이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질병관리청은 50세 이상 성인에게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권장하고 있고, 특히 65세 이상 고령층의 발생률은 젊은 연령층의 8~10배가량 높다.
대상포진 백신 접종 가격은 백신 종류와 병원에 따라 10만~20만원 수준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 증가 현황과 원인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 이상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75만 원에 그친다. 평균 임금을 받는 고령층이 대상포진 백신을 맞으려면 월수입의 30% 가까이 지급해야 하는 셈이다.
조비룡 서울대 의대 건강사회개발원장은 "초고령사회에서 감염병 예방과 건강 수명을 위한 전략은 더 이상 소아 중심일 수 없다"며 "예방접종은 고령층의 감염병으로 인한 입원과 합병증, 사망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백신 접종을 통해 노인의 의료비 부담과 요양 필요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근거도 축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선욱 분당서울대병원 입원전담진료센터 교수도 "이미 재정 여유가 있는 지자체의 경우 자체적으로 고령층의 예방접종을 추가 지원하기도 한다"며 "그렇지 못한 곳이라도 국가에서 조금 더 도와줄 수 있다면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재정 등을 고려해 지원 방식의 변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백신은 의료보험에 속하지 않는 비보험 체계에 속해있다. 접종자가 전액 부담하거나 NIP 포함 시 국가가 전액을 부담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재정 부담이 커 새로운 백신을 NIP에 도입할 때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조 원장은 "보장성을 낮추되 대상을 넓히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일부 고령층 백신에 대해 본인 부담 일부를 인정하면서도, 일정 연령군 이상에게는 정기 예방접종 항목으로 지정해 건강관리에 대한 책임 있는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라며 "질환별 위험군(심혈관 질환자, 당뇨병 환자 등)에는 차등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추가할 NIP 백신 접종 항목을 고려할 땐 의학적 필요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고령층에게 독감 예방 효과가 높은 고면역원성 백신 접종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례다. 현재 고령층은 기존 독감 백신을 무료 접종받고 있지만, 여전히 사망 환자의 80%가 고령층에서 발생하고 있다. 고면역원성 백신은 면역 체계를 활성화해 더 강하고 지속적인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현재 국내에서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사용 가능한 고면역원성 백신으로는 CSL 시퀴러스의 '플루아드 쿼드'와 사노피의 '에플루엘다테트라'가 있다.
추은주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면역 기능이 저하됨에 따라 고령층은 기존 백신만으로는 충분한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고면역원성 독감 백신의 고령층 접종은 국내외적으로 권고되는 만큼 의학적 필요성이 검증됐다. 추후 정책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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