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내년 2월22일까지 개최하는 '전지적 백남준 시점'은 시간의 개념을 다층적으로 다루는 전시다. 1960~1970년대 당시로선 낯선 장르였던 비디오아트를 설명하기 위해 백남준이 출연했던 인터뷰 영상 등을 활용해 시간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전시를 구상했다.
1964년 백남준이 처음 제작한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흑백 TV에 전자석을 부착해 전자빔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방해하는 방식으로 달의 형태를 만들었다. 추상적인 시간을 시각화한 것인데, 백남준은 독일 ARD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은 느낄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의 일부분을 붙잡아 공간에 배치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자석 TV' 작품 역시 자석을 TV에 대고 움직이면서 내부 형광 물질과 전자빔이 충돌해 빛을 내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TV 속 전자빔이 자석의 방해를 받아 자석 쪽으로 빨강, 초록, 파랑 삼색의 일그러진 화면이 추상적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관객은 직접 자석을 움직여 매 순간 변하는 시각 예술을 체험할 수 있다.
'세 대의 카메라 참여' 작품은 흑백 카메라 3대가 관람객의 모습을 빨강, 초록, 파란색으로 표출한다. 관객 참여형 전시작으로 3색 이미지를 통해 현실에 대한 인식과 표현을 되짚어보게 한다.
'참여TV'는 관객이 마이크에 전하는 소리를 불규칙한 패턴 이미지로 전환해 표시한다. 1963년 첫 개인전 당시 선보였던 작품으로, 리본 모양의 '댄싱 패턴'이 관람객 소리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변화한다.
1960년 열렸던 백남준의 콘서트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 모습을 담은 5장의 사진은 백남준의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소개한다. 당시 백남준은 쇼팽을 연주하다가 피아노를 부수고 객석에 있는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달려 나가 버렸는데, 그런 일탈적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의 존재를 찰나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수영 학예사는 "백남준 선생님의 퍼포먼스가 폭력적이고 과격한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본래 의도는 카타르시스가 전하는 충격과 극한에 이른 전자적 충동과 놀라움을 전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작품 '천왕성'은 백남준의 예술적 상상력을 우주로 확장해 24개의 모니터를 통해 다채로운 영상을 표출하는 모습으로 제작됐다. 태양계 7번째 행성으로, 메탄 성분으로 청록빛을 띤 채 희미한 얼음을 품은 천왕성의 모습을 화려한 네온으로 표현했다. 박남희 관장은 "백남준 선생님은 행성 중 가장 어둡고 느리게 움직이는 천왕성을 통해 시간과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집요하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고 설명했다.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천왕성 전시는 2006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백남준은 '해와 달' '금성' '화성' '해왕성' 등 행성 연작을 선보였으나 해당 작품들은 현재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상아 학예사는 "몽타주처럼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시를 감상할 수도 있지만, 각 작품에서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비교하며 시간의 다채로운 방향성을 경험할 수도 있다"며 "작품들에는 빨리 감기와 되감기, 플러스 시간(기억)과 마이너스 시간(망각)이 흐르고 있다. '삶에는 되감기가 없기에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백남준 선생님의 가르침도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