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관세전쟁을 앞두고 원·달러 환율이 2009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금융권의 건전성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원화 가치가 하락할 경우 환차손이 커지면서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업 대출 연체율 등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부담이 높아져 밸류업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금융사들은 자본 건전성 및 외화유동성 관리를 위해 환율 실시간 모니터링, 수출입기업에 대한 신용점검에 나서는 등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9일 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 전일 대비 10.9원 오른 1484.1원에 마감했다. 환율은 장중 한때 최고 1487원까지 오르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12일(1496.5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이 1500원 선도 뚫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면서 금융권도 환율 변동성에 따른 위험자산 관리에 나섰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 및 은행들은 환율 상시 모니터링은 물론 수출입기업에 대한 신용점검, 특별 지원 등을 통해 자산 건전성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KB금융은 자금시장 동향 및 환율 변동 추이 등 시장 동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비상대응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시장과 외환업무 중심으로 환율 실시간 모니터링 및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며 "다만 경영전략 방향에 환율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주요 내용으로 반영해 밸류업 시나리오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한지주도 "환율 10원당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0.8bp(1bp=0.01%포인트) 정도 하락하는데, 이는 즉 100원 올라도 8bp라는 점에서 엄청난 타격은 아니다"며 "다만 수출입기업들이 환율 변동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기업지원방안에 초점을 맞춰 대응 중"이라고 밝혔다.
하나금융지주는 수출기업 실적 악화, 환율 변동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및 수익성 저하에 따른 신용위험 증가로 연체 및 부실 자산 관리 강화에 초점을 맞춰 대응 중이다.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기업 대출 부실 위험 증가에 따라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이차전지 산업 등을 중점 관리업종에 편입해 은행 포트폴리오 정책에 반영해 여신집중도를 완화하고 있다"며 "또한 잠재부실 영역 조기 선정 및 연체관리 강화로 자산 건전성 관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지주는 비상대책조직에서 유관부서 협의를 통해 환율 수준별 방안을 수립해 대응하고 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환율 수준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중이며 수준에 따라 파생상품 등 환율 민감 자산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며 "우량여신 중심 대출 취급 등 외환 여신 관리를 강화하고 보수적으로 운용해 미사용 한도를 선별적으로 감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 금융권이 비상관리체제에 돌입한 것은 환율변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수출입기업들의 연체율이 늘어날 경우 금융사들의 RWA 관리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RWA는 원화 기준으로 환율이 급상승하면 외화 대출자산이 더 불어나게 돼 CET1의 하락요인이 된다. CET1은 금융사의 재무건전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보통주자본을 RWA로 나눈 값이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건전성이 좋다는 의미다.
올해 1분기 기준 4대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KB금융(13.66%), 신한지주(13.2%), 하나금융지주(13.2%), 우리금융지주(11.9%)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CET1 비율을 12% 이상을 권고하고 있다. 금융지주사들은 CET1 비율을 13% 이상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금융감독원이 금융권의 자본비율 완화 조치를 언급한 만큼 건전성 관리 부담이 다소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지난 8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미국 상호관세 대응 점검 회의에서 "은행들이 관세 부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원활히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자본 규제 관련 인센티브 부여방안을 검토하라"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RWA 계산 시 해외 법인 자본의 환 리스크를 최대한 제외하는 방안도 언급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당국의 환율 및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수출입기업에 대한 지원 요구가 있는 만큼 건전성 관리 부담이 다소 줄어들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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