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연금 혁신]①공공은 누적 13만명인데… "민간 시장은 소멸 직전"

공공이 주도하는 韓 주택연금 시장
민간 상품 있지만 사실상 고사 직전
계속 늘어나는 수요…공공만으론 커버 어려워
전문가들 "민간이 보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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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주택연금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공공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은 시장을 주도하며 누적 가입자 수가 14만명에 육박한 반면, 민간 시장은 사실상 죽어있는 상태나 다름없다. 고령층이 늘고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주택연금에 가입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민간 상품 있지만 판매 극히 적어…수요자들 "공공보다 덜 매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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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택연금 시장은 주택금융공사가 판매하는 주택연금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있다. 주금공의 주택연금 상품은 2007년 첫 판매 이후 가입자가 꾸준히 늘었다. 첫해 515명이었던 가입자 수는 2022년 10만명을 넘었고, 올해 2월 기준 13만7887명에 이른다.


고령층이 늘면서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지만, 주금공도 활발하게 제도를 개선했다. 18년 사이 가입연령을 낮추고 주택기준은 상향했으며, 상품 유형을 다양화하는 등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혔다. 무엇보다 내 집에 살면서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종신형인 데다, 담보로 맡긴 주택의 가치보다 연금을 더 받아도 사후에 돈을 토해내지 않는 비소구형 상품인 점이 수요를 끌어들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공 주택연금이 성장하는 사이 민간에서는 상품 개발이나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수요자도, 공급자도 이 시장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국가가 보증해주는 주금공 상품이 있는 상황에서 민간 상품을 굳이 가입할 유인이 없었다. 상품을 공급하는 민간 금융사 입장에서도 수익을 낼 만한 상품을 설계하기가 까다로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 공시가격 12억원 이하는 사실상 공공이 모두 커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굳이 적극적으로 뛰어들 유인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10여년이 흐르면서 민간에서는 시장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국내 3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은행)에서 주택연금 상품을 취급하고 있지만 판매는 극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 주택연금 상품과 달리 대출 기한이 최장 30년까지 정해진 비종신형이고, 받은 연금액이 담보 주택의 가치를 넘어서면 차액 상환의무를 갖는 소구형 상품이다. 수요자가 민간 주택연금 상품을 선택할 유인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주택연금 사각지대 더 커질라…"민간 활성화 진지하게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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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연금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노인인구가 1000만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택연금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특히 우리나라의 고령층은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가구의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은 지난해 81.3%까지 늘었다.


문제는 고령자가 늘고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공적 영역에서 그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 고가 주택 보유자까지 모두 품기는 힘들다. 고가 주택일수록 월 수령액도 많아지는 구조인데 재원이 한정돼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 서민을 지원한다는 존립 취지와도 상충돼 비난받을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다주택자도 공공 주택연금 상품에는 가입할 수 없다. 주택연금에 가입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다.

노후 대비에 대한 고령층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주택연금 수요 실태를 조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집이 상속재산이라는 인식이 커서 집을 담보로 한 주택연금 가입에 소극적이었다면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진 걸로 나온다"며 "자녀가 부양해줄 것이란 기대 없이 내 노후는 내가 챙긴다는 인식이 오히려 강하다"고 말했다. 고가주택 보유자들도 주택연금에 가입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인연금 등으로 노후에 대비할 수 있는 가계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민간 주택연금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초고령화 시대에 대응해 금융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은아 한국은행 금융안정연구팀장은 "금융권이 그동안 레버리지를 통해 가계 자산을 확대하도록 돕는 기능을 주로 해왔다면 앞으로는 실물자산의 연금화와 같이 생애주기에 따라 자산과 소득이 평탄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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