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우먼톡]연애소설 구운몽, 누구를 위해 쓰였나

저자 김만중 키워낸 여장부이자
로맨스 소설 즐겨봤던 해평 윤씨
인간적 자유분방함 소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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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아도 정말 재미있는 내용이다. 남자주인공이 8명의 여성과 만나 서로 치열하게 사랑하고 다투며 엮인다. 그중에는 공주도 있고 용왕의 딸도 있고 적국의 암살자도 있는데, 여성들은 자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싸운다. 그리하여 모두 사이좋게 부부가 되어 온갖 세속의 명예와 부귀영화를 누릴 대로 누리게 된다. 비록 결말에서 이 모든 것이 꿈이었고 허무하다는 식으로 마무리 짓지만, 구운몽은 절대로 교훈을 위한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결말로 면피를 했을 뿐, 그전까지 있었던 자유분방하고 세속적인 욕망이야말로 구운몽을 읽는 진정한 재미이자 이유이다.


이런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은 "어머니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썼다고 했다. 과연 어떤 어머니이기에 이런 글을 기쁘게 보았을까.

그런데 김만중의 어머니, 해평 윤씨는 고생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았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의 군대는 강화도를 점령했다. 이때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해평 윤씨의 남편 김익겸과 시어머니 서 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평 윤씨가 남편과 시어머니의 뒤를 따르지 않은 것은 3살 난 어린 큰아들 김만기와 그리고 배 속에 있는 둘째 아이 때문이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는 열 달 뒤 태어났으니, 이것이 바로 김만중이었다.

비록 가족들은 충절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만, 해평 윤씨는 지아비 없는 혼자가 되었고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 시대에는 아버지 없는 자식들은 놀림을 받았고 아비 없는 탓에 행실이 나쁘다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래서 해평윤씨는 아들들의 교육에 정성을 기울였다. 공부책들을 구해 아이들을 가르쳤고, 소학이나 당시, 사략을 직접 가르치기까지 했다. 다행히 두 아들들은 처절한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해 모두 과거 시험에 급제했고, 김만중은 장원까지 했다. 그러다가 큰아들 김만기의 딸이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영예는 오래가지 않았다. 인경왕후는 천연두에 걸려 요절하고 말았다. 이후 숙종은 인현왕후와 혼인했지만 정작 장희빈을 총애했다. 이후 벌어진 정치 싸움에 김만중이 휘말렸고, 숙종의 미움을 받은 그는 귀양을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그런데 김만중은 이런 처절한 현실 정치 속에서도 구운몽을 써냈다. 정치가 김만중과 구운몽의 세계는 너무나도 달라서 과연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인데, 과연 어머니를 위해 소설을 썼다는 것은 핑계였을까, 아니면 진실이었을까?

사실 소설 읽기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주요 취미 중의 하나였다. 다만 사회적인 인식은 좋지 못했다. 사랑, 모험 등 세속적인 내용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랬기에 소설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


김만중은 구운몽을 한글로 썼다. 어머니에게서 공부했기에 한글 사용이 능숙했으리라. 게다가 구운몽같이 치열한 사랑 이야기를 양반 남자가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연애소설을 읽어봤다는 것이기도 하다. 누이가 없었던 김만중에게 그만큼 많은 연애소설을 공급해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역시 어머니인 해평윤씨가 아니겠는가. 죽은 남편을 대신해 집안을 건사하고 아들들을 키워낸 여장부이면서도, 틈틈이 자유롭게 연애하는 로맨스 소설을 즐겨 보고 그걸 또 아들들과도 함께 했던 것이리라. 그런 해평윤씨는 완벽한 양반 마님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참으로 인간적이었고 마침내 구운몽이라는 작품으로 남았다.

이한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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