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환영받는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들도 사모펀드(PEF)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사모펀드 초창기부터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서 인수합병 관련 업무 자문을 한 이력을 바탕으로 '코치'에서 직접 '선수'로 뛰어들었다.
변호사들은 투자은행(IB) 출신이나 회계사, 경영컨설턴트와 비교해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소수로 꼽힌다.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늘 수요가 끊이지 않았고, 막대한 몸값을 받을 가능성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모펀드 업계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소수 정예 변호사들이 있다.
국내 최대 법무법인 김앤장 출신 인물들은 대형 사모펀드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1세대 멤버인 김광일 부회장은 김앤장에서 M&A 전문 변호사로 활약하다 2005년부터 MBK파트너스에 합류했다. MBK의 차세대 주자로 꼽혔던 박태현 파트너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앤장 변호사 출신이다.
지금은 고문으로 물러난 VIG파트너스(옛 보고펀드)의 박병무 전 대표도 김앤장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 연세대 경영대학원(MBA) 및 미국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변호사 및 기업 CEO로서 여러 경험을 쌓은 뒤 2011년 VIG파트너스에 합류했다. 현재는 엔씨소프트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정연박 VIG파트너스 부대표도 2009년부터 VIG파트너스 합류 전까지 김앤장에서 M&A 및 PEF팀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거래를 자문했다.
그 밖에 한앤컴퍼니는 다소 최근인 2023년 김앤장에서 권윤구 부사장을 영입했다. 2001년부터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며 사모펀드와 관련한 다양한 M&A 거래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법률자문을 수행했다. 김앤장 시절 한앤컴퍼니의 SK해운 인수, 한온시스템 마그나그룹 유압사업부 인수 등 한앤컴퍼니와 함께 일한 경력도 있다.
이들은 법률과 규제 리스크 관리에서 우위를 가졌다. M&A 계약서, 지분 구조, 우발채무, 소송리스크 등에서 법률적 함정을 잘 파악해 거래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다. 특히 복잡한 규제 환경에서 거래 성사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기업 구조조정에도 능숙하다. 회생, 파산, 채권자 협상 등 법적 절차를 주도해 왔다.
회계사들은 일찌감치 사모펀드 업계에 자리 잡고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손익계산서와 재무상태표, 현금흐름표를 정밀하게 분석해 '저평가기업'을 발굴했다. 인수 이후에도 기업의 재무 개선, 내부통제 강화, 핵심성과지표(KPI) 설계 등을 강조하며 기업 가치를 끌어올렸다.
IMM프라이빗에쿼티와 IMM인베스트먼트는 회계사 출신들이 세운 대표적인 사모펀드다. 외국계 출신들이 즐비한 사모펀드 업계에서 순수 국내파 출신 회계사들이 의기투합해 출범시켰다. 이후 국내 토종펀드의 '맏형' 격으로 성장했다.
송인준 IMM PE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회계법인 아서앤더슨(현 딜로이트안진)에 입사했다. 이후 회계 실사, M&A 자문 등을 맛본 뒤 한국종합금융에서 본격 경험을 쌓았다. 이후 CKD창업투자 등을 거친 뒤 창업을 결심, 2001년 구조조정전문회사(CRC) IMM앤파트너스를 만들었다. 삼일회계법인 출신인 장동우, 지성배 대표가 만든 IMM창업투자와 2004년 합병해 IMM인베스트먼트가 탄생했고, 이후 2006년 IMM PE가 분할돼 나왔다.
창업자들이 회계사 출신이다 보니 IMM에는 유독 회계사 출신들이 많다. 김영호 IMM PE 투자부문 대표도 삼일, 안진, 산동(현 삼정KPMG) 등 주요 회계법인에서 근무한 회계사였다. 서울대 경영학과 선배인 송인준 대표의 제안을 받고 IMM에 합류했다. 2023년 IMM인베스트먼트 대표로 발탁된 변재철 대표도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2014년 IMM인베스트먼트에 합류했다.
JKL파트너스 역시 회계사 중심으로 출발한 회사다. 삼정회계법인(현 삼정KPMG) 출신 회계사인 정장근·강민균·이은상 대표가 2001년 CRC로 독립한 이후 2008년부터 PEF로 자리 잡았다. 회사 이름의 JKL도 세 대표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지었다.
이들은 회계사 출신이면서도 단순 투자가치, 숫자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주주가치까지 중시했다. 2017년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기관투자가가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바탕으로 삼는 지침이다. 주주 역할을 충실히 하고, 위탁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 투명하게 보고하겠다는 취지다.
변호사와 회계사 출신들이 복잡한 거래 구조나 조항을 설계할 때 협상력과 해석 능력이 뛰어나 법률적 허점을 줄이는 데 유리하지만, 종종 '현장'을 간과하다 발목을 붙잡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소비자의 여론에 크게 좌우되는 유통, 소비재업종에서 이 같은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PE에서는 투자한 회사의 경영까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기존 회계사, 변호사 시절의 업무 방식과 감각을 그대로 끌고 들어오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며 "숫자와 법률 조항뿐 아니라 기업 내부 현장과 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MBK의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 사태에서 불거진 소란이 대표적이다. 홈플러스 공동대표를 맡은 김광일 MBK 부회장은 M&A 전문 변호사이면서 공인회계사이기도 하다. 레버리지 비율 80%에 달할 정도로 고위험 구조로 접근하면서 표면적인 법적 리스크는 정교하게 관리했지만, 시장 변화 등 영업환경 리스크는 과소평가했다. 물론 모든 시장 예측이 들어맞아 투자가 족족 성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실패 이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현장과 사회여론을 놓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홈플러스가 사람들의 일상과 여러 납품업자의 생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무게감을 간과한 채 재무적 리스크만 바라보며 기습 기업회생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전체 펀드 수익률로는 이미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홈플러스를 손절매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비단 변호사 출신뿐만 아니라 소수 엘리트들과 일하던 경험이 많은 PE 업계 사람들이 종종 겪는 비슷한 시행착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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