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요리는 마치 새로운 문을 여는 것과 같았습니다."
'프랑스 요리계의 거장'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는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첫 소감을 이같이 회고했다. 김치를 비롯한 발효 채소의 복합적인 맛은 서구권 요리에서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가니에르 셰프는 "채소를 발효해 만든 김치처럼 산뜻하지만 풍부한 발효의 맛은 레몬이나 식초를 활용하는 프랑스에는 없는 감각"이라며 "신선한 채소를 활용해 미묘한 맛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불교의 음식과 비슷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가니에르 셰프는 '셰프들의 셰프'로 불리며 프랑스 요리의 철학을 써 내려온 혁신가로 평가받는다. 1996년 파리의 호텔 발자크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오픈한 뒤 1년 만에 미쉐린 3스타를 획득했다. 이후 27년간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파리와 런던, 서울, 상하이, 두바이 등 전 세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을 열었다. 이 레스토랑은 현재 가니에르 셰프의 수제자 '프레데릭 에리에' 셰프가 이끌고 있다. 가니에르 셰프는 매년 한 두차례 방한해 식재료와 메뉴를 점검한다. 가니에르 셰프는 지난달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선보이는 특별한 메뉴는 무엇인가.
▲레스토랑은 항상 스페셜한 메뉴로 가득하다.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다. 항상 최고급의 퀄리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번 방한을 기념한 스페셜 코스는 제주 봄 바다에서 영감을 얻었다. 제주 옥돔과 최고급 한우 등 한국 특산물에 최고급 블랙 트러플을 가미했다. 봄이기 때문에 꽃송이버섯 등 샐러드를 곁들인 상큼한 메뉴도 준비했다. 피에르 가니에르만의 정체성과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메뉴다.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왼쪽)와 프레데릭 에리에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총괄셰프(오른쪽)가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피에르가니에르 서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요리계의 피카소'라고 불리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나조차도 스스로를 사업가라 생각하지 않고 아티스트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리는 창조와도 같다. 항상 어떠한 새로운 것이 있는지 생각한다. 음식은 부드러움과 감정을 담아야 한다. 한 편의 영화와 음악과도 같이 섬세함이 들어가야 고객도 느낄 수 있다. 코로나 기간 3년간 한국에 못 왔었지만, 프레데릭 셰프와 나는 매년 만나서 얘기를 하고 메뉴를 정했다. 놀랍게도 14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음식에 대한 철학을 나누고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내곤 했다. 나의 음식에 대한 철학이 프레데릭 셰프에게 반영이 됐다고 볼 수 있다.
- 셰프의 요리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감정(Emotion)으로 나의 요리 철학을 설명할 수 있겠다. 고객들에게 단순히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전달하고 고객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음식에는 부드러움과 사랑의 감정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도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고객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
- 요리 외의 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낸다. (웃음) 그 외의 시간에는 운동을 하기도 하고, 박물관이나 오페라를 가서 작품을 보기도 한다. 책도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는다. 어떻게 보면 지루한 삶이다. 대부분은 주방에서 셰프들과 함께 일한다. 개인적으로는 전 세계에 있는 셰프들을 만나고 다닌다. 방한 기간 10년 동안 파리에서 함께 일했던 '뛰뚜아멍' 레스토랑의 김도현 셰프와 만날 예정이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미셰린 1스타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 가장 인상 깊었던 손님은 누구였나.
▲밥 딜런, 빌 클린턴 등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중 밥 딜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손님으로서 밥 딜런을 만났을 때가 기억에 남기보다는,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을 좋아한다. (웃음) 그의 음악 속에서 반복되는 멜로디를 통해 열정과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 요리할 때 예술이 영감을 주는 편인가
▲콜롬비아 아티스트 ‘페르난도 보테로(콜롬피아 화가, 조각가)’를 통해 시각적 영감을 받았다. 사실 예술은 우리 인생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는 컵을 보더라도 컵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다양한 면을 보려고 노력한다. 한국에서 '홍삼 수플레'를 개발했을 때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하다가 개발한 메뉴다.
- 최근 한국에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가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 고객들의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졌다는 걸 몸소 느낀다. 17년 전 레스토랑을 오픈했을 때, 한국 고객들은 음식의 맛에 굉장히 엄격했다. 당시에는 파인다이닝이라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고객들은 음식의 변화를 쉽게 변화들이고 취향이 변화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최근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젊은 고객들이다. 한국에서는 20·30대가 파인다이닝을 즐긴다. 프랑스에서와는 다른 모습이다.
- 셰프로서 본 한국 음식의 매력은 무엇인가.
▲채소를 발효한 김치와 같은 한국 발효 음식의 미묘한 맛이 매력적이다. 처음 한국에서 이러한 맛을 발견하고 마치 새로운 문을 여는 것과 같았다. 프랑스에서는 레몬이나 식초를 활용하는데, 이들은 한국의 발효 음식처럼 산뜻하고 복합적인 맛이 나지 않는다.
- 최근 K-푸드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유럽인의 입장에서 K-푸드는 굉장히 호기심을 갖고 접할 수 있다. 미술, 영화, 음악, 기술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미식에 집중하고 있다. K푸드는 토속적이다. 신선한 채소를 많이 활용하고 있어 불교의 음식과도 같은 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 셰프에게 위로를 주는 음식은 무엇인가.
▲저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올리브오일과 품질 좋은 버터를 바른 빵 한 조각, 그리고 치즈와 와인, 싱싱한 굴, 스모크 햄을 각각 먹는 것이다.
- 손님들에게 위로를 위한 음식을 추천한다면.
▲식사 전에 하는 간단한 샴페인과 와인이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 향후 요리계에서 중요해질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보나.
▲'열정'과 '고유성'이다. 요즘에는 다양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있다. 이중 셰프만의 정체성을 가진 레스토랑이 성공할 것이다. 고객들은 앞으로도 더욱 셰프만의 고유성을 찾을 것이다. 한국은 기술이 진보되어 있어 셰프들이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95%가 에어컨 없이 일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숯으로 요리를 했다면, 요즘에는 간단하게 전기를 활용해서 요리하고 있다. 기술 진보는 과거보다 요리 환경을 분명 개선했다.
- 기후 변화로 식재료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10년 안에 참치가 없어질 거라 예상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셰프들이 '사르디나'라는 품종을 사용하고 있다. 이 또한 너무 찾다 보니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피에르 가니에르(가운데) 셰프와 프레데릭 에리에(왼쪽) 피에르가니에르서울 총괄셰프가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피에르가니에르서울 주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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