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 경쟁이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개별 기업들은 자체적인 기술력 증진에 나서는 한편, 국가적·제도적 변화에도 긴밀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 ‘리벨리온’은 그런 두 가지 숙제를 안고 AI 현장을 누비는 AI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이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인텔과 스페이스X, 모건스탠리 등 미국의 다양한 기업에서 반도체 설계 관련 경력을 쌓아왔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4인의 공동창업자와 함께 리벨리온을 설립했다. 지난 4년간 리벨리온은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AI반도체 아톰 양산과 상용화는 물론, 아람코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유치를 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2024년, 박 대표는 SK텔레콤의 자회사였던 사피온코리아와의 합병을 이끌어내며 한국 AI 인프라의 역사에 한 획을 더했다. AI로봇이 커피를 만들고 사람은 춤을 추는 성수동 이색공간, 봇봇봇 (BOTBOTBOT)에서 지난 13일 박 대표를 만났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성수동의 로봇 컨셉의 카페에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김혜연 안무가와 대담하고 있다. 국내 대표 NPU 기반 AI 반도체 스타트업인 리벨리온 박 대표와 김 교수는 AI 반도체 업계 전반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윤동주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최근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며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습니다. 향후 AI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나요.
▲중국은 AI 반도체 시장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제재 이후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죠. 최근에는 화웨이가 자체 AI 칩을 개발해 엔비디아 없이도 AI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AI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울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의 독점적 기술력과 소프트웨어 생태계까지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서 경쟁력이 부족한데, AI 반도체 시대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가 AI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필요한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국 반도체 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설계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에서도 반도체 설계보다는 메모리 사업 중심으로 인재가 몰리는 구조죠. 결국 반도체 설계 인재를 육성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개편해야 합니다. 승진 시스템, 연구 지원 정책 등을 조정해 설계 인력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단기적인 수익보다 AI 반도체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할 때입니다.
-AI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역할이 점점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무엇이며, 기업이 이에 어떻게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AI는 이미 인간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습니다. 특히 AI가 연구 논문을 요약하거나 코드 오류를 찾아주는 방식으로 전문가들의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죠. 하지만 문제는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AI를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실질적인 성장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 차원에서는 AI를 단순한 효율성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AI와 인간이 함께 발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미래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AI 시대에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 방식이나 경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I 시대에는 단순한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부분인데, 교육이 너무 정답을 알려주기만 하면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길러지지 않더라고요. 결국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직접 부딪히면서 해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실제 AI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죠. 따라서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려면, 단순한 학습을 넘어 실전 경험을 쌓고, 다양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급변하는 AI 산업 현장에서 리벨리온은 AI 반도체 시장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나요.
▲리벨리온은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기존의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AI 반도체가 아닌 추론(inference) 특화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AI 연산이 점점 증가하면서 기존의 GPU 기반 시스템은 전력 소모와 비용이 비효율적이죠. 리벨리온은 엔비디아처럼 범용 AI 연산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학습된 후 실제 적용될 때 최적화된 신경망처리장치(Neural Processing Unit·NPU)를 개발합니다.
쉽게 말하면, 엔비디아는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강점이 있지만, 리벨리온은 학습이 끝난 모델을 실제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이죠. 기존의 AI 반도체 시장이 GPU 중심으로 움직였지만, 리벨리온은 전력 효율성, 성능 최적화, 그리고 맞춤형 반도체 설계를 통해 차별화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영향력이 매우 큰데, 리벨리온이 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전략은 무엇인가요.
▲엔비디아는 GPU 기반 AI 학습 분야에서 독점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AI 모델을 학습하는 데 필요한 연산량이 엄청나다 보니, GPU의 병렬 연산 구조가 최적화돼 있죠. 하지만 리벨리온은 이와 다른 전략을 씁니다.
우리는 AI 추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AI가 학습한 후 실제로 사용될 때 연산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GPU가 아닌 NPU 기반의 반도체가 훨씬 더 효율적이죠. 또한 GPU는 범용성이 높지만 그만큼 불필요한 연산도 포함됩니다. 반면 리벨리온의 반도체는 특정 AI 모델에 맞춰 최적화된 연산 구조를 설계하기 때문에 전력 효율성과 비용 절감 효과가 큽니다. 지금은 엔비디아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AI 반도체 시장이 점점 세분화될 것이고, 리벨리온은 맞춤형 AI 추론 칩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입니다.
-AI 연산이 기존의 CPU, GPU와 어떻게 다르고, 특히 리벨리온이 개발하는 MPU, NPU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기존의 중앙처리장치(CPU)는 직렬(Sequential) 연산 방식이기 때문에 AI 연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GPU는 병렬(Parallel) 연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AI 학습에서 활용되지만, 여전히 범용적이라 불필요한 연산이 많고 전력 소모가 큽니다.
리벨리온이 개발하는 NPU는 AI의 특정 연산 패턴에 맞춰진 맞춤형 반도체입니다. 예를 들어, AI 추론 과정에서는 특정한 행렬 연산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데, 리벨리온의 NPU는 이를 최적화해 연산 속도는 빠르게, 전력 소모는 낮게 설계됩니다. 즉, AI 학습에는 여전히 엔비디아의 GPU가 강력하지만, AI가 실생활에서 활용될 때는 리벨리온의 NPU기반 AI 반도체가 훨씬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솔루션이 됩니다.
-범용인공지능(AGI)의 등장 가능성이 점점 논의되고 있습니다. AGI가 현실화했을 때, AI 반도체 산업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나요.
▲AGI가 등장하면 AI 연산량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할 것입니다. 현재의 대형 언어 모델(LLM)도 엄청난 연산량이 필요한데, AGI가 되면 그 수준이 몇 배 이상 증가하겠죠. AI 반도체 시장에서도 연산 최적화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지금처럼 엔비디아의 GPU만으로 AI를 학습하고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용도별로 특화된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필요할 겁니다. 리벨리온은 그런 맞춤형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AGI 시대에도 고성능, 고효율 AI 추론 칩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