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의 '3000원짜리' 건강기능식품(건기식)에서 시작된 제약사와 약국의 갈등이 이른바 '약국 갑질' 논란에 휩싸이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까지 이어지자 관련 당사자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제약사 세 곳 가운데 한 곳은 다이소 철수를 결정한 반면, 다른 두 곳은 당분간 판매를 계속하겠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약사단체는 과징금까지 부과받을 위기에 놓였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다이소가 건기식을 판매하기 시작한 후 약국들이 불편한 반응을 보이게 된 건 일양약품, 대웅제약, 종근당건강 등 3사가 자사 제품을 홍보하면서 '약국보다 가격이 싸다'는 점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건기식의 성분이나 함유량, 원산지, 부재료, 용량, 포장비용 등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가격'만을 부각시켜 홍보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약국은 건기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일부 약사들이 '다이소에 입점한 제약사의 다른 의약품을 모두 반품하고 판매하지 않겠다'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대한약사회마저 '앞으로 제약사가 약국에 공급하는 건기식의 공급가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지 지켜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소비자들은 이를 '약국의 횡포'로 받아들였다. 소비자단체까지 가세해 제약사에 다이소 판매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약사회의 행위에 대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부당한 조치이자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결국 다이소 건기식을 출시한 지 닷새 만에 일양약품이 철수를 결정하면서 '약사회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고, 공정위는 13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약사회에 조사관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상황을 두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 속에서 과거 '갑·을 지위'에 매몰돼 있던 약사들이 부메랑을 맞은 격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은 이미 다이소에서 식품을 구매하고, 새벽배송으로 건기식을 배달받고 있는데 제약사의 유통채널을 제한한다고 해서 약국 건기식을 구매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다이소 판매를 결정할 때 약국의 반발을 예측 못 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논란이 확대될수록 제품 홍보도 되고 판매도 늘어나는 효과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사가 주력 유통망인 약국을 벗어나 새로운 판로를 찾고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히려 한 시도는 신선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간 국내 건기식은 인터넷몰 판매가 70%를 차지할 만큼 온라인 유통에만 치우쳐 있었는데, 다이소라는 오프라인 저가 생활용품 매장에서도 건기식을 구매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일례로 화장품 판매점 CJ올리브영이나 편의점 CU는 건기식 매출이 계속 늘어나자 이미 자체상표(PB) 건기식을 출시하거나 건기식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특화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제약사들은 입장이 애매해졌다. 약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고 공정위까지 지켜보고 있는데 판매를 중단한다고 하면 자칫 오랜 거래처이자 고객사인 약국들을 더 곤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웅제약은 일양약품과 달리 다이소 납품을 유지키로 했다. 종근당건강도 같은 결정을 조만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김태민 변호사(식품위생법률연구소)는 "인정받은 기능성 원료로 제조된 건기식은 그 성분이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품질 면에선 차이가 없지만 추가된 부재료와 마케팅 비용, 유통채널 등에 따라 각 제조사가 가격을 책정해 판매하게 된다"며 "안전에 문제가 없는 한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합법적인 유통이 제한되거나, 불필요한 논쟁으로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 행위가 위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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