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칩 선두기업 엔비디아가 발열 문제 해결을 위해 유리기판 활용에 나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간 유리기판 개발에 주력해온 국내 기업들엔 새로운 사업기회가 열린 셈이다.
11일 외신 보도 및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자사의 칩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TSMC에 "앞으로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L’ 예약의 비중을 대규모로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CoWos는 TSMC가 자랑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여러 개의 작은 칩을 하나로 묶어 성능을 높이고 전력 소모를 줄인다. 집적도와 대역폭이 작은 S와 매우 큰 L,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엔비디아는 이 중 L 버전으로 본인들의 칩 대부분을 만들어달라고 TSMC에 요청한 것이다.
특히 엔비디아는 L 버전이 인터포저(부품 사이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실리콘 대신 유리기판을 써 열 관리 문제를 크게 개선한 점을 주목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유리기판은 칩이 성능을 높여야 할 때 팽창되는 열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온도를 안정화한다. 이에 따라 과열을 피해 전력의 낭비도 막을 수 있다.
엔비디아가 유리기판에 주목한 이유는 블랙웰 칩의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겪었던 경험 때문으로 해석된다. 앞서 엔비디아는 지난해 신형 AI 칩 블랙웰을 연중에 출시하려 했지만, 제품이 구동될 때 고열이 발생하는 돌발 변수를 해결하지 못해 출시를 미뤄야 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께 TSMC와 함께 결함을 수정하고 올해 상반기 중 블랙웰을 시장에 내놓겠단 계획을 밝힌 상태다. 지난 3일 TSMC가 미국에 145조 원(1000억 달러)을 추가 투자해 반도체 공장 5곳을 더 짓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TSMC는 그간 대만에 있는 공장에 한해 CoWos 기술을 활용했지만, 앞으로는 미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거점을 옮기게 되면 미국 공장에서도 이 기술을 활용한 칩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TSMC는 곧 경영진들이 참석하는 정기 생산회의에서 엔비디아가 전달한 요구사항을 검토한 뒤, 엔비디아에 선결제를 요청할 예정이다. 비용의 선지급을 통해 자사의 최첨단 기술을 쓰겠단 엔비디아의 뜻이 확고한지를 재확인하겠단 방침이다.
엔비디아의 요청을 TSMC가 받아들이고 현실화되면, 유리기판의 상용화도 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유리기판을 AI시대의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해 온 우리 반도체 업계에도 훈풍이 찾아올지 주목된다. 엔비디아, TSMC와 끈끈한 ‘3각 동맹’을 이어 온 SK하이닉스의 생산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해 온 유리기판 개발에 전력투구해온 SKC가 호재를 맞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SKC는 자회사인 앱솔리스를 통해 유리기판 사업을 넓혔고 올해 중 유리기판 양산에 착수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 현장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후 자사의 전시 부스에 들려 SKC의 유리기판 제품을 들어 올리며 "(엔비디아에) 방금 팔고 왔다"고 말하는 등 관련 사업에 주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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