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을 비롯한 각종 규제가 AI 기술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규제를 단계적으로 적용하면서 시행령에서 규제 대상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은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연 AI 관련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해 "AI 기본법에서 진흥 관련 규정은 우선적으로 진행하되, 규제 관련 부분은 2~3년 정도 유예기간을 두는 단계적 적용이 필요하다"며 "전면 시행은 세계 최초인 만큼 규제를 먼저 시행하면 산업 전반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건의했다.
'고영향 AI'에 대한 조항은 대표적인 규제로 꼽힌다. 유럽연합(EU)의 AI 기본법엔 '고위험 AI'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반면, 우리 법은 사람의 생명·신체·기본권 보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영역에서 쓰이는 AI 기술을 고영향 AI로 정의한 바 있다. 고영향 AI에 대한 사업자 책임으론 사전 검·인증(30조), 사전 고지(31조), 위험관리방안 수립·운영(34조), 영향평가(35조) 등이 담겼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는 "고영향이나 '중대한 영향' 같은 개념이 불확실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언급했다. 박 회장도 "이것(고영향)이 정의가 어렵다 보니 하위 법령에서 규제로 구체화하거나, 법 집행 과정에서 여러 해석적 절차를 거치다 보면 급변하는 환경에서 신속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AI 워터마크' 조항이 지나친 규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위 법령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AI 기본법은 31조에서 AI를 이용한 제품·서비스를 제공할 때 생성형 AI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정한다. 박 회장은 "현행법상으론 (고지·표시 의무) 적용 제외가 폭넓게 보장되기 어렵기 때문에 활용에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며 "이 부분은 하위법령에 들어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사권 오·남용 우려도 제기됐다. AI 기본법 40조2항은 민원이나 신고만 들어와도 AI 업체 사업장에 찾아가 장부·서류 등을 조사할 수 있다고 규정해 논란이 됐다. 경쟁사가 허위로 신고하거나 단순 민원만으로도 정부가 현장 조사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박 회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조사 권한을 사용하겠다고 하지만 사업자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지 세심하게 봐달라"라고 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플랫폼 규제도 언급됐다. 박 회장은 "플랫폼에 국한되지 않고 AI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 시도를 원천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며 "예컨대 네이버 AI 모델이 자사 블로그나 지도 정보를 출처로 답변한다면 자사 우대라는 이유로 서비스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대상이 돼 AI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청회에선 AI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으로 ▲AI 인재를 위한 병역특례제도 부활 ▲연구인력에 한해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AI 생태계 수직 계열화 ▲판결문을 비롯한 공공데이터 개방 확대 ▲도전과 실패를 받아들이는 관용적 분위기 등이 나왔다. 장준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내년 AI 기본법 시행까지) 앞으로 남은 11개월이 글로벌 AI G3(글로벌 3대 강국)으로의 도약을 결정짓는 골든타임"이라며 "어떻게 한국형 AI 모범답안을 구체화하느냐에 따라 앞으로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정부는 국내 AI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과 1년 이상 격차가 유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기정통부가 인용한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지난해 3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 AI 기술과 대비한 각국의 격차는 우리나라 1.3년, 일본 1.5년, 유럽 1.0년, 중국 0.9년이었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현안보고를 통해 "국내 AI 업계도 자체 모델을 개발하고 있지만 미국과 여전히 1년 이상 격차가 유지되고 있고 유럽에 비해서도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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