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말부터 국내 4대 금융지주 주식을 1조3000억원 이상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정치 및 외환시장 불안과 차익실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매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지주 회장들까지 기업설명회(IR)에 참석해 투자자들에게 자사의 기업가치 향상(밸류업) 노력을 적극 설명했지만 집 나간 외국인들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24일까지 약 3개월 동안 4대 금융지주 주식을 1조3270억원가량 순매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주식을 팔아치운 금융지주사는 KB금융 으로 지난해 12월 초부터 이달 24일까지 7700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매도가 이어지면서 12월2일 78.04%였던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 24일 75.62%로 2.49%포인트나 빠졌다.
이어 같은 기간 외국인은 신한지주 주식을 4123억원가량 순매도했다. 지분율은 60.98%에서 59.06%로 2.06%포인트 하락했다. 하나금융지주도 1882억원어치를 팔아치웠고, 지분율은 68.17%에서 67.11%로 내려갔다. 우리금융지주만 유일하게 478억원가량 순매수했다. 다만 외인 지분율은 45.92%로 다른 금융지주보다 낮은 편이다.
몇 달 사이에 외국인들이 금융지주 주식을 대거 매도한 것은 계엄 사태에 따른 국내 정치 및 환율 불안과 차익실현 물량 등이 겹쳐서 발생한 일로 풀이된다. 정부 밸류업 정책에 따라 은행들이 작년 초부터 배당금 향상 및 자사주 매입, 소각에 적극 나서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금융지주에 대한 순매수를 이어가면서 작년 11월에는 역대 최고 수준의 지분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12월 초 계엄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내 정치가 불안해지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금융지주를 대량 매도하기 시작했고, 외인 지분율도 낮아졌다는 평가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정치 불확실성이 불거진 12월3일 이후 은행주는 코스피 전체 지수 대비 초과 하락했다"며 "단기간 급등한 환율이 외국인 이탈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KB금융의 경우 이달 초 실적 발표에서 시장 기대치에 미달하는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외인 순매도가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주주환원의 기준이 되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하락하면서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규모가 예상보다 작을 수 있다는 우려감이 외인 이탈을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정태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KB금융의 경우 다른 지주회사에 비해 자본 비율 방어에 실패하면서 시장의 기대치에 미달하는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며 "단순히 단기 수급 약화를 넘어 향후 주주환원 여력 금액 자체를 감소시켰다는 점에서 우려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신한지주는 4분기 지배주주 순이익이 4734억원으로 시장 컨센서스를 29.4%나 하회하면서 시장 우려가 확대됐다. 환율 상승으로 비이자이익 적자 폭이 확대됐고, 자산신탁, 캐피털, 증권 등에서 보수적인 충당금이 반영된 영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과 금융지주회장 등이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서 금융감독원·금융연수원·은행연합회·금융지주 간 사외이사 양성 및 역량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석헌 신한금융그룹 부문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이 원장,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이찬우 NH농협금융 회장, 이준수 한국금융연수원 원장. 2025.2.13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지속되자 금융지주 회장들까지 IR 행사에 참석해 밸류업 의지를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주요 금융지주 회장단은 지난 21일 서울에서 JP모건이 주최한 코리아 콘퍼런스에 직접 참석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자사의 밸류업 정책을 소개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지주 회장이 투자 행사에 직접 참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이들은 13일에도 서울 종로구 금융연수원에서 열린 '사외이사 양성 및 역량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식'에 참석해 올해도 밸류업 정책을 적극적으로 이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고경영자(CEO)들의 호소에도 국내 정치 문제와 규제 우려 확산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주 회장들의 적극적인 호소가 있었음에도 KB금융은 지난 10일부터 25일까지 12거래일 연속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고, 다른 금융지주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의 이자 이익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는 데다 정치 불안도 여전하고, 외인들의 차익실현 매물까지 나오고 있어서 단기간에 외국인이 순매수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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