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당초 이달 말까지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확정 짓기로 하고도 관련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 가운데, 의대 모집인원을 각 대학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실적으로 의료계와 2026학년도 정원을 합의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19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국회 등에 따르면 현재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작년처럼 2000명을 증원한 규모가 될지, 아니면 증원 이전 규모로 돌아가게 될지, 또는 증원 규모를 소폭 줄이거나 아예 감원하게 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 오는 4월 각 대학이 입시요강을 발표하는 점을 고려하면 늦어도 다음 달 중 최종 확정안이 도출돼야 한다.
정부는 일단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원 자체가 아닌 '증원 규모'를 원점에서 검토한다는 것이어서 2024년 정원보다 줄어들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3058명(증원 이전)부터 5058명(2000명 증원) 안에서 특정 숫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수급 추계 등을 통해 현장 의견을 들어 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반면 의료계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증원 백지화'를 고수하는 가운데 정원 논의에 앞서 정부가 정상적인 의대 교육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먼저 마련하라는 게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입장이다. 일부 의료계 인사들은 내년 정원을 3058명보다 더 줄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휴학한 2024학년도 입학생들과 올해 2~3배 늘어난 2025학년도 신입생을 한 번에 교육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2026학년도에는 의대생을 선발하지 않고 한해 쉬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회에선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구성을 위한 법안을 이달 중 상임위에서 처리한 뒤 추계위에 정원 논의를 맡길 예정이다. 지난 14일 열린 공청회에서 의료계는 추계위에 의사를 과반으로 두고 의결권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소비자단체와 학계에선 의사들의 역할이 자문에 그쳐야 한다고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입법이 이뤄져도 추계위에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논의를 시작해 합의가 이뤄지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따라서 추계위와는 별도로 의료계와의 대화를 통해 내년도 정원 논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18일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추계위 설치 법안(보건의료인력지원법 또는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 6개와 관련한 수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엔 내년도 의대 정원과 관련해 '복지부 장관이 추계위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심의를 거쳐 2026학년도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대학의 장은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 중 의대 모집인원을 2025년 4월30일까지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학의 장은 교육부 장관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단서도 붙었다.
이같은 모집인원 조정은 정원 확정 절차에 비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지난해 정부가 2025학년도 모집인원을 50%까지 감축할 수 있도록 하자 실제 국립대 의대들은 증원분의 50%까지만 늘렸다. 모집인원 조정안이 확정되면 국립대 의대는 2025학년도처럼 정원보다 적은 인원을 뽑을 수 있다.
조 장관은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추계위와 관련한 질의에 "위원회 법제화로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며 "빨리 법제화가 되면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결정하는 데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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