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 어린 아들과 함께 나타났다. 2020년생인 그의 아들은 캐나다 출신 가수 그라임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7번째 자녀다. '엑스 애시 에이-Xii(X Æ A-Xii·엑스)'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졌다. 복잡한 비밀번호처럼 들리는 이 이름은 머스크 CEO와 그라임스가 함께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의미 없는 단어를 조합해 이름을 지은 건 아니다. 이름엔 냉전 시대부터 스페이스X까지 관통하는 미국 우주항공 기술의 역사가 담겨 있다.
머스크 CEO와 그라임스는 과거 팟캐스트 인터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들의 이름이 왜 엑스 애시 에이-Xii인지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엑스는 미지수 X를 뜻한다. 애시(Æ)는 사랑(love)과 인공지능(AI)의 의미를 담아 그라임스가 창작한 가상의 단어다. 고대 라틴 문자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지막에 붙는 A-Xii는 원래 A-12였다. 엑스가 태어나던 당시 미 캘리포니아주법엔 '자녀 이름에는 숫자가 포함돼선 안 된다'는 조항이 있어 12를 로마자 표현으로 바꾼 것일 뿐이다. A-12는 머스크 CEO와 그라임스가 함께 선택한 것으로, '아크엔젤-12'라는 항공기를 뜻한다.
머스크 CEO는 특히 A-12에 강한 애착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개인 SNS 계정에 아들 사진을 게재할 때 "아크엔젤-12"라고 지칭했으며, 팟캐스트 인터뷰에선 항공기 A-12를 두고 "미국에서 가장 멋졌던 비행기"라고 찬사를 보냈다.
머스크 CEO가 푹 빠진 A-12는 미국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이 1962년 비밀리에 개발한 정찰기였다. 미국과 소련 사이 냉전이 한참 진행되던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미 방위산업계에 '소련의 모든 요격 미사일을 회피해 날 수 있는 가장 빠른 항공기'를 요구했고, 이에 따라 록히드마틴은 '아크엔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즉 알파벳 A는 아크엔젤의 이니셜이다. A 뒤의 숫자들은 록히드마틴이 설계한 시제기에 붙은 넘버로, A-12는 12번째 실험 기체를 의미한다. 이 항공기는 날개에 붙은 두 발의 거대한 엔진 덕분에 음속의 3배 이상인 마하 3.3으로 비행 가능했다.
A-12의 설계를 기반으로 록히드마틴은 'SR-71'이라는 초음속 정찰기를 탄생시켰다. SR-71은 지상 2만6000m 상공에서 초음속으로 비행하며 소련의 민감한 군사 시설을 정찰했다.
A-12·SR-71을 개발·제조하면서 얻은 기술력은 냉전 이후 미국 우주항공 기술력의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초음속 항공기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비행 중 동체에 가해지는 막대한 열 때문인데, A-12·SR-71 또한 기체 내부의 열을 억누르기 위해 수많은 설계·소재상의 혁신을 거듭했다.
이 노하우가 1981년 미국의 우주왕복선 개발 프로그램에 고스란히 전수됐다. 우주왕복선은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날아갔다가 대기권에 재진입해 지상으로 돌아오는 유인 우주 항공기로, 착륙 시퀀스에서 A-12·SR-71의 6배 수준인 마하 20의 속도와 열을 견뎌야 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2009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프로젝트 초기에 NASA·록히드마틴 엔지니어들은 A-12와 그 후계기들을 우주왕복선의 테스트베드 삼아 착륙 환경을 시뮬레이션했다.
덕분에 엔지니어들은 우주왕복선의 동체 소재로 가장 적합한 알루미늄 합금을 찾아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열로부터 동체 아랫부분을 방어할 방열판도 발명했다. 방열판은 공기층이 주입된 특수 실리카를 넣어 만든 검은색 타일로, 우주왕복선 1대당 2만4000개의 타일을 접착해 대기권 재진입 시 가해지는 수천도의 열을 차단한다.
우주왕복선은 2011년에 비용 문제를 이유로 퇴역했지만, 그 유산은 다시 머스크 CEO의 우주 개발 스타트업 '스페이스X'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방열판 기술은 스페이스X의 대형 재사용 로켓 '스타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스타십도 A-12·SR-71, 우주왕복선처럼 지상으로 돌아올 때 극심한 열을 버텨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는데, 스타십 동체를 감싼 육각형 모양의 타일이 우주선을 보호한다. 이 타일도 NASA가 개발한 것으로, 우주왕복선에 쓰인 타일의 개량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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