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전 회장 "철강 관세 부과하면 美도 손해… 의연히 대처해야"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 본지 인터뷰
"트럼프 관세 정책 100% 시행 어려워"
시행 전 타협안 조율 가능성 내다봐

"모든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면, 미국도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우리 기업들은) 너무 겁먹지 말고 더 기다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이 미국의 수입 철강 관세 부과 방침과 관련해 국내 업계에 '의연한 대처'를 주문했다. 미국의 철강업 현황과 수요 등을 감안할 때, 관세 부과 조치 시행일(현지시간 3월12일)에 앞서 타협점을 찾아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권 전 회장은 1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진행된 토크콘서트를 마친 뒤 본지와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5% 철강 관세 부과 발표에 대해 우리 철강업계가 취해야 할 최우선 대응 전략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권 전 회장은 철강 전문가로, 포스코를 업계 최고 반열에 올리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세계철강협회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업계에선 국제적 명성과 인지도 또한 높다.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이 1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과학, 시대를 잇다'에서 강연을 한 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과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조성필 기자)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이 1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과학, 시대를 잇다'에서 강연을 한 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과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조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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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전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관세 강화 정책을 100% 시행한다고 보긴 어렵다"며 "타협안이 나온다면 수용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처럼 국가별 협상 여지가 있을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8년에도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산 철강에 25% 관세 부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국가별 협상이 이뤄지면서 별도 합의를 도출했고, 당시 우리나라 역시 무관세 조치를 받는 대신 대미 수출 물량을 연간 약 263t으로 제한하는 쿼터제를 적용받았다.


권 전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똑똑한 사람이라 발표처럼 무자비하게 관세 강화 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라며 "만약 수입하는 모든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면 미국도 손해를 많이 보게 된다"고 했다. 예고대로 관세 부과가 이뤄진다면 미국의 철강기업이 생산할 수 없는 품목에 대한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게 되고, 원자재 가격 또한 급등할 가능성이 농후해 결과적으로 미국에도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권 전 회장은 우리 철강업계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너무 겁먹지 말고 조금 기다려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 영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대응에 나서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역시 조만간 협상을 통한 해결점 찾기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내포된 제언이다. 우리 철강업계가 향후 정부와 협의해 대미 협상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당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철강·알루미늄 관세 포고문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철강 제품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일부 예외를 적용했던 우리나라 등에도 일률적으로 25% 관세를 적용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왼쪽)이 1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과학, 시대를 잇다'에서 강연을 한 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과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조성필 기자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왼쪽)이 1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과학, 시대를 잇다'에서 강연을 한 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과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조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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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포고문 서명에 앞서 관세 예외나 면제는 없다는 입장을 밝혀 업계에서는 모든 철강 생산국이 같은 경쟁 환경에 놓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포고문 서명식에서 호주에 대한 관세 면제를 "많이 고려하겠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달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권 전 회장은 우리 철강업계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대학원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6년 포스코에 입사했다. 이후 포스코 기술연구소 소장, 포스코 기술총괄 사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후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 포항공과대학교 이사장,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 세계철강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철을 통해 바라본 인류의 여정'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향후 인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철강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해 쇳물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 공법 등 혁신 기술의 적용이 요구되고 있다면서 "이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우리 철강업계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국내 1위 철강업체 포스코 역시 고로 설비를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그 비용만 수십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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