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100년 만에 미국 영토 확장을 주장한 대통령이다. 새로운 미국 제국주의(The new American imperialism)다."(이코노미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토 확장 행보가 거침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 후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실상 가자지구에 대한 미국의 영구 점령 의사를 밝힌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멕시코만의 공식 명칭을 '아메리카만(Gulf of America)'으로 변경하도록 지시했으며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미국이 되찾아야 하며 덴마크령인 그린란드 통제를 위해 군사적, 경제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문제를 마치 '돈이 되는' 부동산 개발 사업처럼 여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는 훌륭한 해변이 많아 로켓 발사대가 있는 곳에 호텔 건설을 제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BBC는 "행정부 관리들에 따르면 그린란드를 인수하려는 트럼프의 관심은 꾸준하면서도 치명적일 정도로 심각하다. 캐나다와 파나마 운하에 관한 이야기도 이제는 농담처럼 취급되지 않는다"며 "트럼프의 충격적인 제안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부동산 개발업자가 대통령이 돼서 외교 정책에 부동산 개발이 포함되더라도 크게 놀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간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충격적인 발언에 해당 국가들은 곧바로 반박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이 건국되기 전 북미권 지도를 언급하며 미국을 '멕시칸 아메리카'로 부르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는 미국산 주류, 주스 등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또 그린란드는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외국 기부금 수령 금지법'을 제정했다.
파나마 정부도 운하 통행료를 두고 미국과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파나마가 세계 1등 국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맨 끝에 있는 나라도 아니다"라며 "파나마 운하는 영원히 파나마 국민의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식 제국주의' 공격 대상 중에서도 특히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이주시켜 미국이 소유한 후 재개발하자는 구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강제 이주는 제네바 협약에 의해 금지돼 있어 국제법을 명백하게 위반한다는 이유에서다.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AL)은 미국이 가자지구를 점령하겠다는 제안이 충격적이라며 "국제법을 위반해 더 큰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개발 계획이 국제법과 상충하는 것은 물론 현실 가능성도 극히 낮다는 주장이 나온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트럼프가 전 세계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미 국제개발처(USAID)에 매년 400억달러 지원하기를 꺼린다면, 가자주민 200만명을 수용하는 데 필요한 수천억달러를 어디서 찾을지 의문"이라며 "설령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이 가자에서 쫓겨난다고 할지라도 그 땅이 미국의 영토가 되진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일부 영토를 합법적으로 점령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가자 주민들이 조국을 떠나도록 강요하는 것은 트럼프가 말한 '자선'이 아니라 반인륜 범죄다. (가자지구 개발 주장은) 완전히 비현실적이고 미국의 평판을 손상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트로이 카터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도 "전쟁으로 파괴된 땅을 '트럼프 골프 리조트'로 개발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계획이 아니라 (가자 주민들에게) 모욕"이라며 "진정한 지도자는 (영토 문제에 대해) 부동산 거래처럼 접근하기보다는 실질적 해법을 찾는다"고 말했다.
영토 확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야욕은 그가 "미국이 계속해서 세계의 경찰일 수는 없다"고 '고립주의'를 표방하며 국제 사안에 대한 미국의 관여를 줄이겠다고 주장한 것과 배치되는 모습이다. 미국 내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팽창주의로 가득한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를 더이상 고립주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니퍼 미텔슈타트 러트거스대 교수는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그가 고립주의자라고 불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캐나다 합병, 그린란드 점령, 파나마 운하 점유 요구 등 외국 영토를 차지하겠다는 위협은 고립주의와 일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미텔슈타트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을 고립주의보다는 주권주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1930년대 주권주의자들이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하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운동을 이끌었듯,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주권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국제 협력을 거부하고 '강한 미국'을 주장하는 주권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텔슈타트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권주의적 방침이)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국은 '먼로 독트린' 시대처럼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그들의 지배권을 되찾으려 할 것"이라며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 전 세계의 정권들이 더 대담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타국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힘의 우위를 이용해 자신에게 이롭다면 무엇이든지 행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의 편집장을 지냈던 안드레아스 클루스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대통령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서로 충돌하는 이념이 아니라 '공통된 사고방식'이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분석했다.
클루스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했던 냉전 시기가 겉으로는 위험해 보여도 실제 안정적이었으며 궁극적으로 평화롭게 종결됐다고 봤다. 반면 시진핑 국가주석, 푸틴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념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권력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며 이것이 제국주의의 표준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클루스는 "아시아에서는 시진핑이, 동유럽에서는 푸틴이 신제국주의를 구현하는 데 방해를 하던 미국의 역할이 최근 쇠퇴하고 있다"면서 "푸틴과 시진핑은 트럼프와 협상을 통해 세계를 각자의 영향권으로 나누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트럼프, 푸틴, 시진핑이 '전리품'을 두고 합의하지 못하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들 국가 내부적으로는 독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는 사이 제국주의자들 중간에 낀 약소국 다수가 희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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