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40대 A씨는 아파트 주차장만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미 충전을 마친 전기차가 계속 충전기를 차지하고 있어 자신의 차량을 충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기준 시간을 넘어서까지 주차하고 있는 차량의 번호판을 찍어 신고하는 일은 이제 A씨의 일상이 됐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충전기를 둘러싼 이웃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 보급률 자체는 선진국에 비해 높지만 충전기 대부분이 완속 충전기라는 점과 현실에 뒤처진 규제가 충전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친환경 차 충전구역'에 대한 신고 건수는 통계가 시작된 2022년 6만1106건에서 지난해 33만7374건으로 약 452% 증가했다. 이마저도 12월 신고 건수는 집계되지 않은 수치다. 특히 전체 신고 사유 가운데 불법주정차, 충전 후 방치 등 '전기차 충전 방해 신고' 증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엔 해당 사유로 총 1098건의 신고가 접수됐는데, 이는 전년 동월(97건)과 비교해 1032%나 증가한 것이다.
법정 기준시간을 넘어서까지 충전기를 비우지 않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신고 건수도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와 전기차 동호인 카페에는 '안전신문고에 신고하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었다. 일반차량이 전기차 충전 자리에 주차하고 있는 사례와 전기차보다 충전 시간이 3분의 1 정도로 짧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이 긴 시간 충전기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 글도 다수 올라와 있었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에 따르면 급속충전기는 1시간 이상, 완속 충전기는 14시간 이상 이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지난달 9일에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요건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도 행정 예고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PHEV 차량의 완속 충전구역 이용 가능 시간이 7시간으로 줄어든다.
국내에 구축된 전기차 충전기는 누적 40만기를 돌파했고, 충전기당 전기차 대수를 의미하는 '차충비'도 지난해 12월 기준 1.7대당 1기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를 기준으로 2023년 세계 차충비 평균이 10대당 1기 수준이며, 미국과 유럽 모두 10대를 넘긴 것을 감안하면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수준급인 셈이다. 다만 급속 충전기 수가 부족한 탓에 전기차주들이 부정적인 충전 경험을 겪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전기차 충전기 40만기 중 급속 충전기는 5만~6만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작년부터 급속 충전기가 많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기차 충전 기술이 발전해 6~8시간이면 충전이 완료되는데 14시간 규정은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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