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안영일 할아버지(89)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주방 옆 식탁에서 보낸다. 평생을 함께했던 아내는 치매를 20년 동안 앓다가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요양병원에 잠깐 입원했던 때를 제외하고 그가 혼자 병간호를 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수발을 들었으니 할아버지 몸도 성할 리 없었다.
그는 어느 날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허리뼈가 툭 부서졌다. 골다공증이 원인이라고 했다. 지금은 척추측만증 탓에 허리를 아예 못 쓴다. 집안에서도 지팡이를 짚어야 몇 걸음 뗄 수 있다. 식탁은 되도록 움직이지 않으려고 늘 앉아있는 곳이다. 손을 뻗으면 닿는 김치냉장고에서 반찬 몇 개를 꺼내 끼니를 때운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도 식탁에 올려놨다.
"내가 16층에 살고 있응께 언제 땅을 밟아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나. 가만있어도 허리가 아려분 게, 오른쪽 엉덩이랑 왼쪽 엉덩이를 번갈아 가면서 앉아 있어야 한단 말이여. 밖에 나가는 건 생각도 못허지."
경기도에 사는 아들은 명절에 와서 밥 한 끼 먹고 가면 그만이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아 요양보호사가 주 5일 오지만 하루 두 시간 집안일을 돕는 게 전부다. 누구도 할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작년부터 의료진이 그의 집에 찾아와 진료를 봐주고 있다는 거다.
광주 북구는 노인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 자기 집에서 의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통합돌봄’ 시범지역이다. 방문의료 서비스는 작년부터 시작했다. 북구 안에만 할아버지 같은 방문의료 대상자가 300명에 달한다. 간호사는 매주, 의사는 격주로 그의 집을 찾는다.
지난해 10월29일 오후 1시가 되자 초인종이 울렸다. "아버지, 저 왔어요. 좀 어떠셨어요." 젊은 의사와 간호사가 식탁에 진료 가방을 펼치고 할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가운에 ‘맑은숨 우리내과 원장 김종우’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허리 진통은 어떤지, 진통제와 파스는 남아 있는지, 약은 잘 먹고 있는지를 묻고 당뇨검사도 했다. "오늘은 코로나 주사도 한 대 맞으셔야죠. 따끔해요."
진료를 마치자 김 원장은 할아버지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아파트 앞에 있던 오래된 슈퍼마켓 아시죠? 그 자리에 새로 편의점이 들어섰는데 말이죠…." 동네 이야기를 꺼내자 할아버지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김 원장은 "아픈 상태에서 집에 혼자 계신 어르신들은 우울증이 올 수 있어서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김 원장이 집에 머무는 20분이 짧게만 느껴진다. "선상님 가불고 나믄 또 아픈 거 같당께. 내가 돈은 더 낼 테니께 우리 집에 한 번만 더 와주믄 안 될랑가?" 현관문을 나서는 김 원장의 뒤통수에 대고 그는 매번 이렇게 하소연을 한다. "정말 안 될랑가?" 이 말에 김 원장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방문의료를 한 번씩 받을 때마다 내야 하는 돈은 3만9000원 정도다. 1회 진료비가 약 13만원인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할아버지는 30%를 부담한다. "내가 예전에 해운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혔당께. 여수, 목포, 제주도 안 돌아댕긴 데가 없제. 지금도 공무원연금 받아가꼬 진료비도 내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어. 근디 제일 문제는 사람이여. 사람이 그리워불제."
거실에는 할머니와 같이 쓰던 물건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다. 오래된 가계부, 낡은 유선전화기, 텅 빈 화분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쌓아놓았다. 집안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는 할머니 영정 사진을 뒀다. 성당에서 받아온 묵주와 그가 직접 그린 성화로 장식해놨다.
"추억이 많아서 이 집을 못 떠나겄어. 요양원에는 짐을 다 못 가져가잖아. 애들 엄마 생각이 날 땐 안방에서 붓을 잡아본당께. 이래 봬도 내가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거든. 성당에서 전시회 할 정도는 된다고. 해 질 무렵엔 창밖을 잠깐 내다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걸 구경하면 참말로 좋재. 혼자라도 괜찮아. 의사선상님이 집으로 와주셔서 아파도 걱정 없당께. 나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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