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이어진 식품·외식 가격 인상 기조가 설명절 이후 더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원재료 및 물류비 증가와 환율 상승 등의 여파로 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커진 영향도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등 혼란한 정국 속에서 정부의 물가 관리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탓도 크다. 정부 눈치를 덜 보게 된 기업들의 가격 인상 행렬은 소비자들의 생활고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2.7%를 기록했다. 생활물가지수는 가계에서 소비하는 주요 물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지수로, 국민의 체감 물가수준을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서도 '식품'은 전년 대비 가격 상승 폭이 평균(2.2%)을 상회하는 2.7%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무(98.4%)·당근(65.5%)·김(34.3%)·귤(32.4%)·배추(26.4%) 등의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는 설명이다.
높아진 물가는 이미 설 차례상 비용으로 반영됐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조사한 올해 설 차례상 차림 비용은 서울 전통시장 기준 22만4040원, 대형마트 기준 25만8854원으로 전년 대비 각 1.0%, 2.5% 상승한 것이다.
대형마트나 슈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제품들도 줄줄이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동아오츠카는 해가 바뀌자마자 포카리스웨트 등 음료 가격을 평균 6.3%씩 올렸으며, 대상은 지난 16일부터 청정원 마요네즈, 드레싱 등 소스류 제품과 후추 가격을 평균 19.1% 인상했다. 오뚜기는 2월1일부터 컵밥 7종 가격(편의점 판매가 기준)을 12.5% 올릴 예정이다. 옛날 사골곰탕 제품(500g)도 2500원에서 3000원으로 500원 오른다.
식탁 물가에 더해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설 연휴 전후로 가격을 올려 외식 물가 부담도 커졌다. 버거킹은 설 연휴 직전 일부 제품 가격을 100원씩 인상하기로 했다. 대표 메뉴인 와퍼는 7100원에서 7200원으로, 갈릭불고기와퍼는 7400원에서 7500원으로 인상되고 와퍼 주니어는 4700원에서 4800원이 된다. 프렌치프라이는 2100원에서 2200원으로 100원 오른다. 스타벅스도 톨 사이즈 음료 22종의 가격을 200~300원 인상했으며, 매일유업 관계사 엠즈씨드가 운영하는 폴바셋도 주요 제품 가격을 200∼400원 인상했다.
식품업계에선 설 이후 가격 인상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물가 관리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틈을 타 가격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주요 식품회사들과 교류하면서 가격 상승을 억제해왔는데, 최근 압박이 크게 완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식품 기업들은 정책 방향이 바뀌기 전 선제적으로 가격을 올려 수익성 방어에 나설 수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주요 식품기업들은 릴레이 가격 인상을 벌인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진행되던 2017년 초 식품류 가격은 평년 상승 폭의 갑절인 7.5%까지 올랐다.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 폭등과 고환율에 따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상기후 등으로 설탕, 카카오, 커피원두 등 주요 원재료 가격이 폭등했고, 환율이 급격히 치솟아 원재료 수입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건비와 전기세 등 공공요금, 배달비 등 간접비용까지 상승해 버티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 인상 요인은 많지만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부담돼 자체적으로 감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 반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중 가격 등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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