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경제가 2.0% 성장에 그쳤다. 건설 경기 부진이 심화한 데다 민간 소비 증가폭 역시 줄면서 전망치를 밑돌았다. 지난해 4분기는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 심리가 위축, 성장률이 0.1%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은 23일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정부 예상치(2.1%)와 한은이 지난해 11월 경제전망에서 제시한 전망치(2.2%)를 모두 밑도는 수치다. 한은이 이달 업데이트한 중간점검 전망치(2.0~2.1%) 하단에 턱걸이했다. 다만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큰 폭으로 늘면서 직전 해(2023년) 성장률(1.4%)은 웃돌았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2021년 4.6%, 2022년 2.7%, 2023년 1.4%로 3년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다가 올해 2.0%로 반등했다. 건설투자가 역성장을 기록했고 민간소비 성장률 역시 둔화하는 등 내수가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IT 수요 확대 등으로 수출과 설비투자 증가폭이 확대되면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023년 1.8%에서 지난해 1.1%로 줄었다. 건설투자는 1.5%에서 -2.7%로 감소 전환했다. 수출은 2023년 3.9%에서 지난해 6.9%로 큰 폭 상승했다. 정부 소비는 1.3%에서 1.7%로, 설비투자는 1.1%에서 1.8%로 각각 늘었다.
경제활동별로는 서비스업 증가폭이 2.1%에서 1.6%로 축소했고 건설업은 3.1%에서 -2.6%로 감소 전환했다. 제조업은 증가폭을 키웠다. 2023년 1.7%에서 지난해 4.4%까지 늘었다.
지난해 민간의 성장 기여도는 1.6%포인트로 전년(1.1%포인트)을 웃돌았다. 정부의 성장 기여도 역시 0.4%포인트로 직전 해 0.3%포인트보다 상승했다.
순수출(수출-수입) 기여도는 1.8%포인트로 내수(0.2%포인트) 대비 높았다. 내수는 민간소비, 건설투자를 중심으로 2023년 1.4%포인트에서 지난해 0.2%포인트로 축소됐다. 건설투자 기여도는 -0.4%포인트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설비투자는 기여도가 2023년 0.1%포인트에서 지난해 0.2%포인트로 소폭 늘었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지난해는 수출과 설비투자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했지만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등 내수가 당초 전망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 GDP는 전 분기 대비 0.1% 성장에 그쳤다. 한은의 지난해 11월 전망치(0.5%)를 큰 폭 하회했고, 이달 중간점검 전망치(0.2% 또는 이를 밑도는 수준)에 겨우 부합했다. 수출이 플러스로 반등했으나 내수 회복 흐름이 약화한 결과다.
분기별 GDP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1.3%로 5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다가 2분기 -0.2%로 하락 전환한 후 3분기 0.1%, 4분기 0.1%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해 4분기 수출은 반도체 등 IT 품목을 중심으로 증가했으나 내수에 발목이 잡혔다. 정치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심리 악화 등으로 민간 소비 회복세가 약화한 가운데 건설 투자 부진이 지속됐다.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전 분기 -0.8%포인트에서 0.1%포인트 플러스로 전환했으나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전분기 0.8%포인트에서 0.0%포인트로 크게 축소됐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민간·정부 소비, 설비투자 모두 증가율이 축소했다. 건설투자는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민간소비는 의류·신발 등 준내구재와 의료·교육 등 서비스를 중심으로 0.2% 증가했다. 정부 소비는 건강보험 급여 등 사회보장 현물 수혜를 중심으로 0.5% 늘었다. 건설투자는 건물건설과 토목건설이 모두 줄어 3.2%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를 중심으로 1.6% 증가했다. 수출은 반도체 등 IT 품목을 중심으로 0.3% 늘어난 반면, 수입은 자동차·원유 등이 줄어 0.1% 감소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농림어업은 재배업을 중심으로 3.9% 감소했다. 제조업은 금속가공제품 등이 줄었으나 화학물질·화학제품, 컴퓨터, 전자·광학기기 등이 늘어 0.1% 증가했다. 전기가스수도업은 가스·증기 및 공기조절 공급업 등을 중심으로 2.9% 감소했다. 건설업은 건물건설과 토목건설이 모두 줄어 3.5% 줄었다. 서비스업은 도소매·숙박음식업 등이 줄었으나 금융 및 보험업, 의료,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등이 늘어 0.3% 증가했다.
신 국장은 "지난해 11월 경제전망 이후 12월에 정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경제 심리가 위축돼 민간소비에 영향을 줬고 건설 선행지표인 착공 수주가 안 좋았던 가운데 12월 신규분양이나 실적이 좋지 않게 나오면서 전망치를 밑돌았다"며 "건설투자는 건설 부진이 계속될 것으로 봤는데 예상보다 심화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교역조건이 개선되면서 0.6% 증가해 실질 GDP 성장률을 상회했다. 전기장비 등 수출품 가격이 원유 등 수입품 가격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한 영향이다. 연간 실질 GDI 증가율(3.9%) 역시 실질 GDP 성장률을 웃돌았다.
지난해 전망치를 밑돈 성장률에 이어 올해 한국 경제가 다시 '1%대 저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 역시 커졌다. 수출 증가율이 크게 떨어지고 내수 부진 속 건설 투자 역성장이 예상되면서다.
정부는 이달 초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올해 한국 실질 GDP 증가율을 1.8%로 제시했다. 지난해 7월 전망한 2.2%보다 0.4%포인트 낮췄다. 1%대 성장률은 2023년(1.4%) 후 처음이다. 정부는 수출 증가율이 올해 1.5%로 급락할 것으로 봤다. 반도체 등 주력업종 경쟁 심화,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국 통상정책 전환 등을 반영한 결과다. 건설 투자는 2년 연속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최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1.7%로 낮춰 잡았다. 지난해 11월 전망치 1.9%보다 0.2~0.3%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로 불거진 정치 불확실성 여파가 성장률을 0.2%포인트가량 낮출 것으로 분석했다. 매년 2·5·8·11월 경제전망을 발표하는 한은은 이달 이례적으로 구체적 숫자를 거론하며 중간 점검 결과를 공유했다. 한은은 낮춰 잡은 전망치 역시 올해 2분기부터 정치 불확실성이 점차 해소되면서 하반기 경제 심리가 회복될 것을 전제로 했다며 정치 불확실성이 추가로 확대되거나 장기화할 경우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지난해 11~12월 전망을 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금융연구원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1%로 내다봤다. 유엔(UN)은 이보다 높은 2.2%로 점쳤다.
전문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성장률 둔화를 비상계엄, 미국 신정부 출범, 환율 등 단기적 이슈 중심으로 바라보기보다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의 한계를 구조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보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40년 이상을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 산업 가운데 상당 부분을 내줘야 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구조로 새로운 산업 동력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 역시 "계엄사태가 지난해 12월 숫자를 많이 위축시킨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지만 내수 위축 신호는 12월 전부터 있었다. 그 추세의 연장선에서 오늘 지표가 나온 것"이라며 "내수 위축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부분을 고민해서 정책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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