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친인척 500억원대 불법대출 혐의로 21일 재판에 넘겨진 데 대해 "다음에 말하겠다"고 함구했다.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대 은행장(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과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을 만나 서민금융 지원 등을 논의한 것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이 원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개최한 '외국계 금융회사 CEO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 원장은 손 전 회장을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데 대한 의견을 묻자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전날 이 대표와 (6대) 은행장 간담회에 대한 의견을 묻자 "(손 전 회장 불구속 기소와는) 너무 다른 주제를 물으셔서"라며 자리를 떴다.
동석한 김형원 금감원 은행감독국장 다음 달 초 우리금융·은행 검사 시점과 내용 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서류 검토 중"이라고 대답한 뒤 자리를 빠져나갔다. 경영실태평가 등급에 따라 동양생명 ·ABL생명 인수 향방이 가려질 전망이어서 금융권의 큰 관심을 받는 사안이다.
이날 이 원장이 주최한 간담회에는 도이치 등 은행, AIA생명 등 보험, JP모간 등 금융투자회사 10곳 CEO가 참석했다. 이 원장 주재 외국계 금융사 CEO 간담회는 2023년 7월 이후 1년 반 만에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원장은 한국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감독 당국 대응 현황을 외국계 금융사에 전했다. 미국 중심 무역정책, 기후·에너지 정책 전환 등으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대처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아울러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건전성 감독 제도를 고도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금융시스템이 외부충격에 흔들리지 않고 본연의 기능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국제적 정합성을 반영해 건전성 감독제도를 고도화할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 원장 발언은 외국계 금융사를 특정한 제도를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건전성 감독 체계를 가다듬는다는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업무계획 등을 통해 관련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힐 예정"이라며 "(이 원장 발언이) 국계 금융사 맞춤 건전성 감독 체계를 새롭게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날 자본시장 활성화, 공매도 제도개선, 주주가치 중심의 기업경영 지원 등 자본시장 선진화 과제를 계속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 자리에서 외국계 금융사의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개선했거나 개선 중인 사례 3건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해외주식 매매 규제완화 ▲뇌졸중뇌출혈 등 제3분야 보험상품(질병·상해·간병보장) 위험률 산출 ▲망분리 규제 후속조치다.
박성주 금감원 국제업무국장은 "해외주식 매도 시 국내 증권사를 통해야 한다는 법률은 지난해 2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예외를 인정토록 개선했다"며 "보험개발원이 뇌졸중, 뇌출혈 등 생명보험사 수요가 높은 제3보험 상품 관련 위험률 산출 관련 시스템 변경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 8월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금융분야 망분리개선 로드맵을 마련한 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금융사의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허용했고 연구개발(R&D) 분야 망분리 개선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회의에 참석한 CEO들은 ▲트럼프 정부 무역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리스크 확대 ▲미 연방준비제도 금리인하 속도 둔화 ▲공급망 재편으로 안전자산 선호 확대 등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금융시장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CEO들은 ▲충분한 외환보유액 ▲국가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 제한적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원활하게 마무리 한 경험 등을 근거로 들었다.
CEO들은 금융당국에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 공매도 재개 등 자본시장 정책을 일관된 방향으로 추진해달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글로벌 금융사와 투자자들이 한국 금융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며 "앞으로도 주요 금융현안에 관해 외국계 금융사들과 긴밀히 소통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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