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일 출범하면 국내 철강·배터리 업계는 막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무역장벽’에 산업계가 또다시 ‘비싼 값’을 치러야 할 판이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보편관세 10~20%를 적용하면 한국산 배터리 소재를 쓰는 배터리·전기차는 북미 내 가격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는다.
예를 들어 5000만원에 팔고 있는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 값은 2000만원, 양극재 800만원·음극재 200만원 등 전기차 소재 가격만 1600만원이다. 여기에 보편관세 20%가 더해진다고 가정하면 전기차 가격은 5320만원까지 올라간다. 한국산 배터리 소재를 쓰게 되는 배터리, 전기차 기업은 하루 아침에 관세로 320만원가량 가격을 올리거나 이익 훼손을 감수해야 할 처지가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캐즘(성장 산업의 일시적 수요 정체)을 겪고 있는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상승은 또 다른 수요 정체, 하락을 이끌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하면 모든 수입품에 보편적 관세 부과를 공약했다. 최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외국 기업에 관세를 징수할 목적의 새로운 정부 기관 ‘대외수입청’을 만들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그간 중국에서 원료를 받아 국내를 중심으로 양·음극재 등 중간소재를 생산해 미국서 완제품인 배터리셀을 제조하는 구조를 띠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가공된 배터리 소재도 자국산과 동등하게 인정해 전기차 소비 보조금을 준다. 이로 인해 ‘한국 소재 제조, 미국 완제품 생산’ 구조가 가능했고 소재 기업들의 투자도 국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배터리 소재 관세가 현실화하면 한국 배터리 업계 사업 모델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북미 현지 공장을 새로 짓거나 규모를 키우는 추가 투자가 유력하다. 원가 비중이 가장 높은 양극재의 경우, 에코프로비엠, LG화학, 포스코퓨처엠 등이 북미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중에서도 미국 내에 공장을 짓는 기업은 LG화학 테네시 공장(연산 12만t)이 유일하고 포스코퓨처엠과 에코프로비엠은 캐나다에 공장을 짓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이후 어떤 식으로 구체화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가뜩이나 가격 하락 압박을 많이 받고 있는데 관세 부과마저 이뤄진다면 이익 훼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미국 수출이 쿼터(할당제)로 묶인 철강업계도 보편관세 타격이 불가피하다.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은 지난 14일 기자와 만나 ‘북미 제철소 건설을 검토하고 있냐’는 질문에 "규모나 건설 지역은 미정이지만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구체적인 사업 검토 단계를 거쳐 자사 공장이 있는 조지아주 등 몇몇 주 정부 측과 접촉해 인프라 등 투자 여건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고 제철소 투자 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북미에서 본격적인 전기차 생산에 나서는 현대차 그룹이 전기차 강판 등 철강 수급을 위해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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