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떻게 보면 제가 창업해 오랫동안 자식처럼 키워왔던 회사이고 계약서까지 맺었는데, (성과급을) 지불하지 않은 상황이 아직도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잘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임지훈 전 카카오벤처스 대표가 회사를 상대로 낸 약 600억원 규모의 '성과급 지급' 소송 법정에 나와 직접 답답함을 토로했다. 카카오벤처스 측이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양측이 합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8-2부는 임 전 대표가 카카오벤처스를 상대로 낸 598억여원 규모의 약정금 청구소송 2심 변론기일을 지난 10일 열고, 사건을 조정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조정이란 분쟁 당사자가 대화하고 서로 조정안을 제시해 합의하도록 법원이 돕는 제도다. 조정이 성립되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민사소송 변론엔 당사자 출석 의무가 없지만, 이번 변론기일엔 임 전 대표가 직접 법정에 나왔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처음 재판에 출석한 그는 "사건 자체 금액이 꽤 커 보일 수 있지만,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선 사실 미리 정리된 비율대로 성과보수 계약을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고 말했다. "저보다 늦게 같은 투자를 했던 투자자도 큰 규모의 성과 보수를 받았다"고도 했다.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카카오 창업자)의 증인 출석은 불발됐다. 김 위원장은 'SM엔터테인먼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지난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다. 임 전 대표 측과 재판부의 거듭된 출석 요청에도, 거듭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왔다.
다만 김 위원장은 최근 재판부에 서면으로 입장을 전달했다. 여기엔 '임 전 대표와 성과급 지급 관련 이야기를 나눈 점을 인정하고, 기여 부분에 대해 대가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절차 및 규정상 지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임 전 대표 측은 "상당히 전향적인 답변"이라면서도 "여전히 김 위원장의 출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계속 안 나온다면 정신아 카카오 대표 등에 대한 증인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법정에서 카카오벤처스 측이 '조정에 따른 협의' 의사를 보이면서, 사건은 조정회부됐다. 재판부가 "규정문제로 지급이 어렵다는 것이면, 법원 결정에 따라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취지인가"라고 묻자, 카카오벤처스 측은 "임 전 대표도 동의하고, 재판부도 조정을 진행하신다면, '절차에 성실하게 임하고, 이후 그 결정에 대해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논의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고 검토 정도는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임 전 대표 측은 "여전히 카카오벤처스의 1인 주주는 카카오이고, 카카오의 최대 주주는 김범수씨"라며 "카카오벤처스 측이 (성과급 지급 시 규정 위반 등에 따른) 배임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만, 법원 조정이나 결정을 따르는 것은 배임이 아니라는 판례도 있다. 김씨가 해결할 용의가 있고, 카카오벤처스도 그럴 용의가 있다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음주 임 전 대표의 출국이 예정된 만큼, 재판부는 오는 20일 조정기일을 열어 양측의 구체적인 입장을 듣기로 했다. 재판부는 "저희(재판부)가 설득할 문제가 아니라 쌍방 의견을 듣고 중간 점을 찾는 것"이라며 각자 내부적인 의사결정을 내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임 전 대표는 2012년 3월 설립된 '케이큐브벤처스'의 초대 대표를 맡았다. 그는 2015년 초 성과급의 70%를 받는다는 내용의 성과보수 계약을 맺었는데, 이후 회사는 카카오 계열사로 편입됐다. 그해 8월 임 전 대표가 카카오 대표로 선임된 뒤 이 계약은 '보상 비율을 44%로 변경하되, 근무 기간과 상관없이 성과급을 전액 지급한다'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임 전 대표가 소송을 낸 것은 2022년 3월이다. 케이큐브벤처스의 1호 펀드가 청산됐지만, 카카오벤처스가 2015년 약정 당시 주주총회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지급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이 펀드는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상장전환우선주 1000주를 2억원에 인수했는데, 두나무가 조단위 규모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카카오벤처스도 3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
임 전 대표 측은 재판 과정에서 "약정 체결 당시 카카오벤처스는 (김 창업자가 지분 100%를 가진) 1인주주 회사였고, 당시 그 승인을 통해 결의된 것"이라며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지 몰랐다'는 주장은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임 전 대표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지난 1심은 "관련 절차가 없었다"며 임 전 대표의 패소로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성과보수 변경 계약이 유효하려면 주주총회의 결의가 필요한데 이를 거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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