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아니고 전부 실제 주민등록증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접촉한 한 신분증 판매업자에게 구매 의사를 밝히자 여성 50여명의 사진이 전송됐다. 모두 주민등록증 속 증명사진을 모아 촬영한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 얼굴은 긴머리 부터 안경을 쓴 얼굴 등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업자에게 가격을 묻자 "원하는 얼굴을 골라서 금액을 선(先) 제시 해달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7일 한 실물 신분증 판매 업자에게 구매 문의를 보내자 주민등록증 증명사신을 촬영한 이미지 50여개가 전송됐다. 50여개의 이미지에는 각각 출생 연도가 적혀있다. 이지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최근 미성년자를 타깃으로 타인의 신분증을 판매하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존에는 위조 신분증 제작을 의뢰하는 수법이 성행했지만, 고가의 비용 탓에 선호도가 줄자 분실물 또는 직접 매입한 신분증을 판매하는 방식이 성행하는 모양새다.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여쯩' '남쯩'을 검색하자 실물 신분증 판매 글이 연이어 노출됐다. 여쯩과 남쯩은 각각 여성, 남성 신분증을 일컫는 은어다. 판매 글에는 '긴 머리, 고양이상 눈매' 등 신분증 증명사진 속 외형을 묘사하는 문구가 함께 기재됐다. 일부 판매자들은 "메신저로 구매 의사를 밝히면 신분증 속 증명사진을 보여주겠다"며 "본인과 최대한 닮은 얼굴을 고르면 된다"고 구매 방법을 안내했다.
이들이 판매하는 주민등록증은 위조품이 아닌 분실된 실제 신분증으로 추정된다. 금융거래와 병원 진료 시에도 이용 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날 한 실물 신분증 판매자에게 "관공서 등에서 사용할 수 있냐"라고 묻자 "위조 신분증이 아니기에 인식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만 신분증 속 지문과 본인의 지문을 비교해 진위를 구별하는 검사기인 싸이패스에 대해서는 "지문 불일치로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판매자는 헐값에 타인의 신분증을 사들여 재판매하기도 한다. 엑스에 신분증 매입을 검색하자 "2004~2006년생 신분증을 매입 또는 판매하고 있다"는 글이 노출됐다. 해당 업자가 "신분증 얼굴 사진과 가격을 제시해달라"라고 올린 글에는 판매를 희망한다는 댓글이 10개가량 달렸다.
실물 신분증을 대거 판매하는 업자들의 주 고객층은 미성년자들이다. 본인의 증명사진을 이용해 신분증 위조를 의뢰할 경우 금액대가 20만~30만원대를 호가하는데 실물 신분증을 구입하는 데는 10만원 초반대의 비용만 소요된다. 급매 상품이라며 10만원 미만에 실물 신분증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위조보다 적은 비용으로 신분증 도용이 가능한 셈이다.
이렇게 미성년자의 손에 들어간 신분증은 담배를 구입하거나 술집과 숙박업소를 출입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일부 업자들은 "타인의 신분증으로 담배를 사는 데 성공했다", "편의점과 술집 모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등의 구매 후기를 SNS에 게재하고 있다. 해시태그에 '술', '담배', '모텔' 등을 추가해 미성년자를 상대로 게시글 노출을 꾀하기도 한다.
전문가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신분증 도용 범죄를 적극 단속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성년자들이 신분증을 위조 또는 사용해 적발된 사례는 최근 꾸준히 느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만 19세 미만의 ‘문서·인장 범죄’ 피의자 수는 2021년 656명에서 2022년 875명, 2023년 1229명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주민등록증 도용은 단순한 신분증 바꿔치기를 넘어 사법 방해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범죄"라며 "판매 업자에 대한 사전 단속과 더불어 사법부도 구매자가 초범이거나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형을 내리기보다 단호한 대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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