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 여파와 더불어 고환율, 고물가, 저성장이 엄습한 세밑에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치면서 밑바닥 경제가 타격을 입고 있다. 예정됐던 행사나 회식을 취소하면서 당장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연휴 기간 계획했던 해외여행도 잇따라 취소하면서 여행업계도 날벼락을 맞게 됐다. 연말연시 내수활성화 노력에도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경제단체와 기업들은 내수 활성화 차원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송년·신년 행사와 내부 모임, 소비 진작 캠페인 등을 잠정 연기하거나 축소하기로 했다.
삼성과 SK, LG그룹 등 주요 그룹은 이날 특별한 종무식 없이 한 해를 차분하게 마무리했다. 내년 1월 4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을 참작해 조기를 게양하고 일부 부서를 중심으로 유족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내년 초 미국에서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가 열리는 만큼 관련 부서에서는 일정에 맞춰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가 나온 현대차그룹에선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참석하려던 신년회를 연기하고 현대차·기아 전 사업장에 조기를 내걸었다. 기아 노동조합도 애도에 동참하기 위해 신년 해맞이 행사를 취소하는 등 최대한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이 외부 행사를 미룬 이유는 이번 여객기 참사 희생자에 기아 광주공장 직원 2명과 기아 타이거즈 홍보팀 직원 1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이 가족 여행을 위해 항공기에 탑승하면서 가족이 모두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아 타이거즈 홍보팀 직원의 세 살배기 아들은 이번 사고의 최연소 탑승자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특히 유통가는 연말연시 준비 중이던 과도한 판촉 활동을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국가 애도 기간에 맞춰 마케팅 계획을 접거나 연기하고, 여행 상품 판매방송 등을 중단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내달 4일까지 신년 세일 행사 관련 점포 외벽 광고판과 배너 등 홍보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본점 디지털 사이니지 ‘신세계 스퀘어’ 크리스마스 영상 송출도 멈춘다. 대형마트와 편의점도 각종 홍보를 축소한다.
해외여행과 항공권 예약은 무더기 취소되고 있다. 여행업계에는 제주항공 사고가 발생 이후 여행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제주항공에 따르면 29일 오전 0시부터 30일 오후 1시까지 항공권 취소 건수는 국내선은 3만3000여건, 국제선은 3만4000여건 등 약 6만8000건으로 집계됐다.
‘연말 특수’도 사라졌다. 한 그룹 관계자는 "회사 차원의 회식 자제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있다"면서 "연말연시라고 들뜨지 말고 평소처럼 근무하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전날 예정했던 임원 송년회를 취소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경제계 새해맞이 행사인 신년인사회도 애도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1월 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열릴 ‘2025년 신년인사회’에 당초 그룹 총수와 경제단체장, 정계 인사 등 500여명을 초청했다. 재계 관계자는 "참석하겠다고 한 총수들도 대부분 참사 이전에 밝힌 의사여서 행사 전날까지 변동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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