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후폭풍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인수대금을 지불하고 자회사로 편입한 직후부터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요금을 올리려고 시도한 것이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한항공 독주를 두고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대한항공은 지난 9일 국내선 항공편에서 보다 공간이 넓은 비상구 좌석과 승·하차가 편리한 일반석 가장 앞줄 좌석을 유료로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달 초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확정 짓고 채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사실상 요금 인상안을 발표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국제선에서는 2021년부터 유료로 판매해 왔고 루프트한자 등 해외 항공사들도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가격 정책"이라고 해명했지만 비판 여론이 들끓자 사흘 만에 이 결정을 철회했다.
아시아나항공도 합병이 결정된 이달 초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 사이 등급 좌석인 ‘이코노미 스마티움’ 좌석 고객에게 그간 제공했던 인천국제공항 비즈니스 라운지 이용 혜택을 돌연 중단했다. 역시 소비자의 항의와 여론의 비판에 못 이겨 지난 20일 해당 혜택을 유지하기로 했다. 앞서 올린 혜택 중단 공지는 아예 삭제했다.
일종의 부채인 마일리지도 다급히 소진하려는 낌새가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발표하기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9, 23일에 걸쳐 세 차례 ‘제주 해피 마일리지 위크’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김포~제주 노선에 마일리지 좌석 총 2만4000석을 공급하기로 했다. 그간 꾸준히 국제선에 마일리지 좌석 공급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아시아나항공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국내선에 갑작스레 마일리지 좌석을 집중 배정했다.
고객에게 불리하게 보일 수 있는 서비스 변경 또는 축소가 합병 결정 첫 달부터 쏟아지고 있다. 모두가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 고객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렇다고 매번 비판 여론에만 기대며 기업의 활동을 일방적으로 압박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당국이 일일이 서비스 가부를 결정하는 ‘핀셋 규제’도 글로벌 추세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품만 더 들고 잡음도 더 커질 수 있다.
결국 고객 선택지를 늘려서 경쟁을 유도하는 식으로 견제해야 한다. 고객이 이탈할 수 있다는 염려를 심어주지 않는 이상 기업은 비용 절감과 요금 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해외 기업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당국의 관리 밖에 있던 외국계 항공사들의 서비스 향상을 유인하는 한편 대안을 자처하고 나선 에어프레미아, 티웨이항공 등 장거리 운항 국내 중소 항공사를 키워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가야 할 방향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들은 국내 유일 대형항공사가 정한 약관 속 빼곡한 글자에 동의할 자유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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