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새 정부 출범 약 한 달을 앞두고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에 사용되는 중국산 범용 반도체를 대상으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에 착수했다. 첨단 반도체뿐 아니라 범용 반도체로 압박 범위를 확대해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취지다.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수개월이 소요될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 대한 보복관세와 수입금지 조치까지 단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23일(현지시간)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중국의 반도체 지배 행위와 정책, 관행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USTR은 중국이 반도체 시장 장악을 위해 시장 점유율 목표를 설정한 뒤 정부 보조금을 활용해 불공정하고 비시장적인 수단을 광범위하게 동원했다고 보고 있다.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는 "중국이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패널, 전기차, 핵심광물 등의 산업에서와 유사하게 반도체 산업에서도 세계 시장 지배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며 "이(정부 보조금)를 통해 기업은 생산 능력을 급속히 확장하고, 인위적으로 반도체 가격을 낮춰 시장 지향적 경쟁기업에 상당한 피해를 주는 동시에 잠재적으로 이들을 제거할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USTR은 이번 조사에서 중국산 범용 반도체의 영향뿐 아니라 이 반도체가 방위, 자동차, 의료기기, 항공우주, 통신, 발전, 전력망 등 주요 산업의 최종 제품에 어떻게 통합되는지도 들여다 볼 계획이다. 중국산 실리콘 카바이드 기판과 반도체 웨이퍼도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상무부 조사 결과 미국 제품 3분의 2에 중국산 범용 반도체가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고, 방위 산업을 비롯해 미국 기업의 절반은 반도체 원산지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향후 10년 동안 전 세계 신규 범용 반도체 생산 능력의 60% 이상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이는 다른 지역의 투자를 억제하고 불공정한 경쟁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의 배경이 된 무역법 301조는 불공정 무역행위를 하는 국가에 대해 미 대통령이 관세를 비롯해 폭넓은 무역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른바 '슈퍼 301조'로 불린다. 상무부 조사에 따르면 중국 기업은 미국 기업보다 30~50% 낮은 가격에 범용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고 일부는 생산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했다. 만약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이 확인될 경우 미국은 보복관세나 수입금지 등 광범위한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의회에 추가 조치 이행 권고도 가능하다.
다만 조사에 몇 달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후속 조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조사는 앞서 중국산 모든 수입품에 대한 60% 관세를 예고한 트럼프 당선인에게 대(對)중국 폭탄관세 부과의 길을 보다 손쉽게 열어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은 세제·재정 등 경제 정책을 비롯해 에너지, 산업, 이민, 외교 등 각종 정책에서 입장 차이가 크지만 대중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동일하게 초강경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올린 관세를 낮추지 않았다. 나아가 지난 5월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이유로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중국산 전기차, 철강·알루미늄, 반도체,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전지 등에 대한 관세를 최고 100%까지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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