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가까스로 셧다운(Shut Down·일시적 업무정지) 위기를 피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는 ‘테크 거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영향력을 둘러싼 추측, 혼란, 우려가 만연하다. 결국 상황이 극에 달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대변인이 이 문제를 명확히 하고 나설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트럼프 당선인의 대변인인 카롤리네 레빗은 "트럼프 당선인이 임시예산안(임시예산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자 의회 공화당 의원들이 그의 시각을 그대로 따랐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공화당의 지도자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퍼스트 버디'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가운데)가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함께 지난 14일 미국 매릴랜드주 랜도버를 방문해 제 125회 육군-해군 풋볼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크게 설득력이 없다. 트럼프 당선인의 재선 캠페인에 2억5000만달러를 쏟아부은 머스크 CEO가 예상치 못한, 비선출된, 통제 불가능한 정치적 거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엑스(X·옛 트위터)에서 2억명의 팔로워들에게 게시글을 올려 정부를 계속 운영할 수 있게 하려던 초당적 계획(임시예산안)을 좌초시켰고,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의 직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머스크 CEO는 지난 수요일(18일) 오전 4시15분에 "이 법안(임시예산안)은 통과돼선 안 된다"고 글을 썼다. 당시 그는 150개 이상의 추가 게시물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예를 들어 의원들의 급여 40% 인상이나 30억달러 규모의 워싱턴D.C. 축구경기장 특혜 등은 임시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인과 거의 보이지 않는 실제 정치 파트너인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은 그보다 훨씬 뒤에 임시예산안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12시간 후 임시예산안은 부결됐다. 머스크 CEO는 엑스에 "국민의 목소리가 승리했다"고 환호했다.
머스크 CEO는 ‘퍼스트 버디’로 불리지만 사실상 트럼프 당선인의 부조종사이자 집행자, 후원자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번 임시예산안 협상에서 확인된 불필요한 혼란은 향후 4년을 예고하는 ‘불행한 미리보기’다.
공화당원들에게 이는 자신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머스크 CEO가 자금을 지원하는 예비선거에서 끊임없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4년 전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을 교수형에 처하자고 외치며 의회를 습격했던 극우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무리로부터 더 큰 위협에 직면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8명의 공화당 의원이 트럼프 당선인과 머스크 CEO의 압박을 뚫고 공화당의 새 예산안인 이른바 ‘스키니 임시예산안’에 이탈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아마도 ‘숫자에 힘이 있다’라고 계산하고, (머스크 CEO가 위협한) 2026년 선거가 정치적으로 너무 먼 미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민주당에 있어 머스크 CEO의 전방위적 존재감은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세력을 상대해야 함을 가리킨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의 귀에 목소리가 닿을 뿐 아니라, 정부 계약으로 지원받는 상당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의원은 이달 초 트럼프 당선인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현재 미국 국민은 그가 당신에게 몰래 속삭이는 조언이 국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적었다.
주목할 점은 머스크 CEO의 트윗 폭풍 이후 기존 예산안에서 삭제된 조항 중 하나가 중국과 관련된 기술 거래에 새 규제를 부과한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해당 내용이 삭제됐다는 것은 머스크 CEO에게 큰 승리다.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대부분 침묵을 지켜온 백악관도 성명을 통해 이 부분을 지적했다. 민주당은 머스크 CEO의 모순되며 이기적인 역할을 계속 지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언젠가 머스크 CEO와 스포트라이트를 나누는 데 지치게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민주당은 머스크 CEO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트럼프 당선인을 부통령 당선인으로 지칭하기 시작하며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과거에도 자신의 이너서클 안에 있던 이들을 해고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엑스를 통한 글로벌 영향력과 엄청난 자산을 가진 머스크 CEO는 이른바 ‘트럼프월드’에 있는 그 누구와도 다른 존재다. 과거 내각 비서관이나 ‘슬로비 스티브’ 배넌과 같은 인물을 쫓아내기는 훨씬 쉬웠다. 이들은 머스크 CEO처럼 막강한 영향력이나 유명세,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들이 트럼프 당선인을 더 필요로 하는 아첨꾼이었다.
반면 머스크 CEO는 트럼프 당선인의 곁에 있음으로써 트럼프 당선인의 입지를 넓혀주는 존재다. 트럼프 당선인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그의 권력을 강화해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머스크 CEO는 트럼프 당선인을 더 큰 존재로 만든다. 일부 공화당원들은 머스크 CEO가 차기 하원의장이 돼야 한다고 제안하지만, 이는 머스크 CEO에게 격이 떨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내년 1월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후, 워싱턴의 새로운 권력 커플(트럼프 당선인과 머스크 CEO)은 더 많은 혼란과 부패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이들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머스크 CEO의 부와 대담함에 매료된 유권자들이 머스크 CEO가 자신의 이익이 아닌, 평범한 미국인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단순하게 여기고 그를 용인할 경우 더욱 그렇다.
니아-말리카 헨더슨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Elon Musk Is Donald Trump’s Wrecking Ball’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철거용 철구인 ‘레킹 볼(Wrecking Ball)’은 철거할 건물을 부수기 위해 크레인에 매달고 휘두르는 쇳덩이를 가리킨다.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맥락에서 누군가가 기존의 질서, 체계, 규범 등을 뒤엎고 파괴하는 역할을 할 때 비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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