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글로벌 채권 펀드에 사상 최대 규모인 6000억달러(약 870조원)가 넘는 자금이 들어왔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올해 통화완화 사이클을 개시하면서 채권 가격 상승(=채권 금리 하락)을 노린 투자가 크게 늘었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년 금리 인하 속도조절을 예고하면서 채권 금리가 뛰고,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의 정책이 초래하는 물가 상승)'이 금리를 더욱 밀어올릴 가능성이 있어 채권 시장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은 시장조사업체인 EPFR 자료를 인용해 올해 글로벌 채권 펀드에 6000억달러 이상이 유입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연간 기준으로 가장 많은 자금이 들어왔던 2021년 5000억달러(약 725조원)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 같은 채권 투자 확대 배경엔 고공행진하던 인플레이션 둔화와 각국 통화당국의 금리 인하가 자리하고 있다. Fed는 지난 9월 금리 인하를 시작해 최고 연 5.25~5.5%였던 기준금리를 이달 기준 4.25~4.5%로 1%포인트 낮췄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보다 앞선 6월 금리 인하를 시작해 기준금리를 최고 4.5%에서 이달 3.15%까지 총 1.35%포인트 내렸다. 투자자들은 올해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채권 시장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올스프링의 마티아스 샤이버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역사적으로 채권 수익률을 뒷받침해 온 통화정책의 실질적인 변화에 올해 투자자들이 큰돈을 베팅했다"며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둔화가 겹치면서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률을 노리고 채권 투자에 몰려들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금리 인하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느려질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채권 금리가 뛰고 채권 가격은 하락하고 있다. 블룸버그 글로벌 종합 채권 지수는 3분기 상승했지만, 최근 석 달간 폭락해 연간 기준 수익률은 오히려 -1.7%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이 통화완화 속도조절을 거듭 시사한 여파가 컸다. Fed는 강력한 경제 성장률이 유지되고 최근 인플레이션이 반등하자 내년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겠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내년 금리 인하 예상 횟수를 0.25%포인트씩 4회(총 1.0%포인트 인하)에서 0.25%포인트씩 2회(총 0.5%포인트 인하)로 대폭 줄였다. 이에 미 국채 금리는 급등해 글로벌 채권 금리 벤치마크인 10년물 기준으로 반년 만에 4.5%를 돌파했다. 지난 1월 3.9%대와 비교해 크게 올랐다.
시장에선 이미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인하'를 예상하고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유출하기 시작했다. EPFR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올해 마지막 FOMC가 예정된 지난 18일까지 직전 일주일 동안 60억달러의 자금을 채권 펀드에서 회수했는데, 이는 주간 기준으로 약 2년 만에 역대 최대 규모였다.
픽텟 에셋 매니지먼트의 샤니엘 램지 멀티에셋 공동 책임자는 "투자자들은 미국 경기침체에 대한 두려움과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 하락)에 대한 광범위한 공포로 채권 펀드에 몰렸다"며 "물가는 하락했으나 경기침체는 발생하지 않았고 미 국채 금리는 높은 수준이다. 많은 투자자가 올해 경험한 (채권) 가격 (하락) 손실을 메우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관세 인상, 불법이민 금지 정책 등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채권 금리가 더욱 뛸 가능성도 남아 있다.
반면 일각에선 채권이 여전히 안전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말보로의 제임스 에이시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 주식은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지만, 금리가 정상화되며 투자자들은 전통적으로 안전자산으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며 "인플레이션은 거의 모든 곳에서 상당히 많이 하락했고 성장도 거의 모든 곳에서 매우 약화해 채권 투자자에겐 훨씬 우호적인 환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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